“요새 음악은 통 들을 만한 게 없어. 그때 음악이 좋았지.” 흔히들 하는 말이다. 18세기엔 모차르트가 새로 작곡한 곡을 들으며 “요즘 것들은…” 하고 혀를 차는 사람이 있었을 테고, 1960년대에는 비틀스의 로큰롤에 귀를 막으며 “저런 게 음악이냐”며 투덜대는 사람도 있었을 거다. 유난히 1990년대 음악에 집착하는 요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더 많아진 것 같다.
MBC ‘무한도전-토토가’가 인기를 끈 뒤 여기저기서 들리는 90년대 댄스 가요에 좀 짜증이 났다. 내 기억에 90년대는 방송국의 눈속임(립싱크)과 녹음 기술 덕에 가수들의 평균 가창력이 가장 떨어지던 시기였고 해외 곡을 대놓고 표절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며 무도회장용 댄스음악 시장이 비대하게 컸던 때였다. 여기저기서 ‘토토가’ 음악을 듣고 있자니 기계음으로 떡칠한 댄스 비트가 불법 복제 테이프를 파는 노점상 스피커에서 터져 나오던 기억이 났다. 그래, 아무렴 어때. 흥청망청 살아도 괜찮았던 그때가 좋았지.
사람들에게 대중음악의 황금기, 그러니까 ‘음악이 정말 좋았던 그때’란 모두 다를 것이다. 어쩌면 ‘내가 처음으로 음악에 빠져들었던 그때 음악’일지도 모른다. 감성의 신경 돌기가 15초짜리 광고 음악에도 알알이 흡착하던 그때. 나이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든 10대와 20대 시절 즐겨 들었던 음악만큼 좋은 건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황금기’라는 판단도 추억과 음악 사이에 있는 정체 불명의 대상을 향한 오조준에 불과한 게 아닐까.
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2000)를 보면서 다시 ‘토토가’를 떠올렸다.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록 마니아인 캐머런 크로 감독이 꼬마 음악 저널리스트로 활약했던 1970년대의 추억을 담은 작품이다. 당연히 70년대 록 음악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 듬뿍 담겨 있다. 감독에게 미안하지만, 그에겐 10대 시절 사랑했던 70년대 록 밴드들이 ‘토토가’의 가수들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캐머런 크로는 어릴 적 음악 저널리스트계의 모차르트였다. 1957년생인 그는 13세 때부터 지역 음악전문지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15세엔 미국의 대표적인 음악전문지 롤링스톤에 이름을 올렸다. 블루스 록 밴드 올맨브라더스밴드의 공연 투어를 3주간 동행 취재한 뒤 롤링스톤의 커버 스토리를 썼을 때 그는 겨우 16세였다. 영화에는 올맨브라더스밴드 대신 허구의 그룹 스틸워터가 등장한다.
영화에는 올맨브라더스밴드를 필두로 70년대 록 음악을 반짝반짝 빛냈던 별들의 음악이 우수수 쏟아진다. 당시의 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화려한 추억의 불꽃놀이에서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 레너드 스키너드, 레드 제플린, 딥 퍼플, 블랙 새버스, 사이먼 앤 가펑클, 예스, 조니 미첼 등 2시간의 상영시간 동안 흐르는 노래만 40곡 이상이다. 곡이 너무 많아서 인상적인 한 곡을 꼽기 어려울 정도다.
☞ 엘튼 존의 ‘타이니 댄서’
캐머런 크로가 ‘토토가’와 달랐던 건 옛 음악들을 추억팔이 용도로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화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곡들도 많이 쓰였다. 엘튼 존의 ‘타이니 댄서’가 그 중 하나다. 공연 중 감전사고로 인한 지역 프로모터와 싸움, 팀 내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을 겪은 뒤 서먹하게 따로 떨어져 앉아 있던 멤버들이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 차에서 흘러 나오는 이 노래를 한 명씩 따라 부르며 멤버들은 무언의 화해를 한다. 음악 때문에 싸우지만 결국 음악 때문에 화해하는 사람들. 말 대신 음악으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타이니 댄서’는 영국인인 엘튼 존과 작사가 버니 토핀 콤비가 미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뒤 처음 발표한 앨범 ‘매드맨 어크로스 더 워터’(1971)에 실린 곡이다. 캘리포니아의 밝은 햇살과 자유분방한 여성들을 보며 느낀 단상이 담겼다. 발표 당시엔 그다지 많은 관심을 끌지 못했는데 그래서인지 ‘타이니 댄서’가 영화에 쓰였다는 소식에 엘튼 존은 “캐머런 크로가 이 노래를 부활시켰다”며 고마워했다고 한다.
과거의 히트곡을 다시 꺼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과거의 명곡을 재발견하는 건 추억이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캐머런 크로가 “음악의 황금기는 70년대”라고 말한다면 꽤 설득력 있게 들릴 것 같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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