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폐장 사태 겪은 전북 부안군 찾아 "과거 잊고 당대의 문제 해결해야…"

“평화는 누군가의 말을 잘 듣는 것, 즉 경청하는 것입니다.”
지난 14일 전북 부안군 부안예술회관에서 열린 ‘평화 콘서트’에서 고은(82) 시인은 “자기 말만 하는 것은 독재자”라며 “혼자 평화를 강조한다고 해서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평화는 둘 이상이 있을 때 필요한 것”이라며 “귀로 듣고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 평화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9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평화친선대사로 위촉된 고 시인은 극심한 주민 갈등이 불거졌던 지역을 돌며 주민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이벤트를 열기로 했는데, 이날 콘서트가 그의 첫 걸음이었다.
고 시인은 다양한 관객들의 질문에 시적 표현과 비유를 쓰며 평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담히 밝혔다. 한국전쟁을 경험했던 전쟁 세대와 자아실현을 최고 가치라 생각하는 현 세대의 간극에 대해 고 시인은 “모든 문제는 당대의 문제”라며 현 세대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내일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과거 먹고 살기 힘들었던 척박했던 이야기는 아무 의미가 없다”며 “오히려 성장이 멈춘 미래를 위해 젊은이들이 지혜를 모으도록 도와야 할 때”라고 했다.
‘향후 세상이 더 평화로워 질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그는 지금 현재 우리의 행동에 달려 있다고 했다. 고 시인은 “연약한 나비 날개가 비에 맞아 찢어지지 않도록 보살피듯 평화와 민주주의도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며 “과거의 평화는 역사적 자료로 삼을 수 있지만 재현되지는 않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평화친선대사로 위촉된 경위에 대해 고 시인은 승부를 싫어하는 성격이 주변에 알려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특별히 평화를 위해 언성을 높인 적이 없다”며 “다만 한국은 분단된 상태로 평화가 절실한 지역이다 보니, 꾸준히 평화에 대한 시를 쓰고 시낭송을 했는데 그걸 주변에서 좋게 봐 주신 것 같다”고 했다. 올해 소망에 대해 “특별한 것 없다”면서도 “새해 희망을 얘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난해 과연 잘 지냈는지 성찰이 함께 뒤따라야 한다.”고 했다.
고 시인은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세계적인 문호다. 전북 군산 출생으로 1958년 등단 이후 ‘만인보’ ‘어느 바람’ ‘백두산’ 등 150여권의 저서를 발표했다. 한국문학작가상, 만해문학상 등 국내 문학상 외에도 스웨덴 시카다상, 노르웨이 비외르손 훈장, 마케도니아 황금화관상 등 다수의 국내외 상과 훈장을 수상했다.
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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