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EU 양적완화 움직임에 환율 하한선 유지정책 전격 폐지
세계 증시 줄줄이 약세, 코스피 일주일 만에 1900선 붕괴
1유로=1.16달러로 11년 만에 최저, 1달러=1070원대로 내려앉아
"안전자산 선호 심리 급속 확산"
연초부터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글로벌 금융시장에 16일 스위스발(發) 폭탄이 터졌다. 유럽연합(EU)의 양적완화 조짐에 스위스 중앙은행이 3년 간 유지해 온 환율방어막을 갑자기 걷어내면서 화들짝 놀란 투자심리가 다시 한 번 요동쳤다. 코스피는 일주일 만에 재차 1,900선을 내줬고 원ㆍ달러 환율은 어느새 1,070원대로 내려앉았다.
영세중립국 스위스는 유로존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지만 EU에 속하지 않아 독자 통화(스위스 프랑)를 사용한다. 스위스의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유럽에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안전자산으로 각광받아(통화가치 상승) 왔지만 그때마다 수출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담이 컸다. 스위스의 대 EU 수출 비중은 56%에 달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10년대 들어 유럽에 재정위기가 고조되면서 유로화 가치가 하락하자 반대급부로 스위스 프랑은 가치가 다시 급상승(환율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에 스위스 중앙은행은 2011년 9월부터 아예 환율 하한선(통화가치 상한선)을 1유로당 1.2 스위스 프랑으로 묶어두고 유로화를 사실상 무제한으로 사들이며 환율을 방어해 왔다. 이 기간에 스위스의 외환보유액도 2,000억에서 5,000억 스위스 프랑으로 급증했다.
문제는 더 이상 스위스가 환율방어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는 것. 유로존의 디플레 우려가 심화되면서 유로화 가치가 갈수록 떨어지고 유럽중앙은행(ECB)이 조만간 양적완화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스위스로선 대부분이 유로화 자산인 외환보유액의 가치가 떨어지는 데다 더 많은 돈을 들여야 환율을 방어할 수 있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이에 스위스 중앙은행은 15일(현지시간) 환율 하한선 유지정책을 폐지하는 한편, 단기 환율급락을 막기 위해 이미 마이너스이던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더 내리는 고육책을 내놓았다. 토머스 조던 총재는 “하한선 유지정책은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어렵고 상식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조차 “스위스가 이번 조치를 미리 알리지 않아 놀랐다”고 말할 정도로 예상치 못했던 깜짝 발표에 각국 금융시장은 일제히 요동쳤다. 전날까지 1유로당 1.2 스위스 프랑 수준이던 스위스 프랑 환율은 장중 한때 0.73 스위스 프랑까지 무려 40% 이상 급락(통화가치 급등)했고 유로화는 1.16달러까지 떨어지며 2003년 이후 11년여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스위스발 쇼크는 마치 나비효과처럼 안전자산 선호심리를 자극했다. 미 달러화는 스위스 프랑에 대해서만 약세를 보였을 뿐, 대부분 통화에 강세를 보였다. 안전자산인 엔화 역시 강세를 타 달러당 115엔대까지 수위를 낮췄고 금 역시 온스당 1,264.8달러(2월 인도분 기준)까지 오르며 작년 9월 이후 최고 수준을 보였다.
반면 위험자산을 대표하는 글로벌 증시는 잇따라 약세를 면치 못했다. 15일 뉴욕 다우지수가 0.61% 하락한 데 이어, 16일 일본(-1.43%), 대만(-0.29%) 증시도 약세로 마감했다.
국내 금융시장은 한층 충격이 컸다. 이날 원ㆍ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1.3원 급락세로 출발해 달러당 1,077.3원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피는 외국인의 3,085억원 순매도 공세 속에 전날보다 1.36%(26.01포인트) 급락한 1,888.13에 마감됐다. 이진우 NH농협선물 리서치센터장은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중앙은행으로 여겨지던 스위스 중앙은행의 ‘배신’에 국제 금융시장에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극도로 확산 중인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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