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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게임에 푹… 아뿔사! 이게 구닥다리 농부를 홀리네

입력
2015.01.1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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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서도 스마트폰 활용 늘어… SNS 판로 뚫고 농사정보 검색

꾸러미 보내는 날을 기억하시는 간전댁할머니가 집으로 오셔서 무청 시래기 삶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세척 방법과 삶는 정도, 갈무리 하는 방법 등을 손수 보여주신다. "내가 해줄꺼이 이거 밖에 없어요" 늘 입에 갈고 다니시는 말씀이다. 우리야말로 뭐 하나 제대로 해드린 게 없는데.
꾸러미 보내는 날을 기억하시는 간전댁할머니가 집으로 오셔서 무청 시래기 삶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세척 방법과 삶는 정도, 갈무리 하는 방법 등을 손수 보여주신다. "내가 해줄꺼이 이거 밖에 없어요" 늘 입에 갈고 다니시는 말씀이다. 우리야말로 뭐 하나 제대로 해드린 게 없는데.

동지가 지나면 노루 꼬리 만큼씩 길어진다던 해가 개 꼬리만큼은 됐나 보다. 주머니 속 전화기가 “여섯시예요!”라고 야무지게 알려주는데 노고단엔 아직 볕이 남아있다. 해가 길어지면 따순 날이 가까워졌다는 신호일텐데, 아직 그런 징조는 보이지 않는다. 내심 다행이다. 조금 더 쉬고 싶으니까.

아직은 한겨울, 쉬어도 되고 그냥 쉬면 되는데 뭐가 불안한가 싶지만, 푹한 날씨에 여기 저기서 따발총 소리를 내는 경운기 소리에 영 맘이 편치 못하다. 그럴 때는 밭에 가서 괜히 흙이라도 한 번 발로 차고 와야 안심이 된다. 어슬렁거리며 마을회관에 모여 수다를 떨다가도 바람 잦아들고 햇볕 좋은 날씨에 “일허기 딱 좋은 날이구만~” 하며 자리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왠지 서운하고 얄밉다. 지일 지가 하는데 말이다.

아무리 봐도 나는 일찍 일어나는 새(early bird)는 아니다. 지금까지 새벽에 일어나 본 적이 열 손가락 안짝이다. 곰이라는 별명처럼 겨울이면 자연에 순응하며 겨울잠 자야 한다고 늦게 일어나고, 여름이면 애써 눈 떠봐도 항상 창 밖은 훤했다. 여름철에 늦게까지 일하는 모습을 본 어르신들은 “아이고 원샌, 참으로 애쓰요”하며 칭찬하시지만, 늦게 시작해서 일이 더딘 건지는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다. 반세기 가까이 그렇게 살아온 걸 어쩔 것인가. 하긴, 새가 뭐 일찍 일어나는 애들만 있나. 난 그냥 부엉이나 올빼미 하면 되지 뭐. 대가리 크고 뚱뚱한 새들은 대개 야행성이더만.

일도 부지런하지 못하지만 생활방식도 마찬가지다. 흔히 말하는 얼리어댑터와는 거리가 멀다. 나도 어디엔가 속하고 싶어서 반대말이 뭐 있을까 찾아보니 레이지어댑터(lazy adapter), 레이트팔로워(late follower) 뭐 이렇게 갖다 붙이는데 잘 안 어울린다. 굳이 말하자면 그냥 구닥다리다. 남들은 새로운 기계만 나오면 동공을 확장시키고 머리를 해면체로 만들어 쫙쫙 흡수했지만, 난 ‘굳이 뭐’ 하며 살아왔다.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새로운 것’들이 등장하는 주기가 점점 빨라졌고, 그걸 쫓아가자니 많이 들여다보고 부지런도 떨어야 하건만, 아마도 그 ‘부지런’ 대목에서 포기하지 않았나 싶다.

올 초 그런 내게 반쯤 똑똑한 물건이 생겼다. 아내가 전화기를 바꾸면서 쓰던 단말기를 물려받았고, D동생도 얼마 전에 기기변경 했다며 “행님, 이거라도 함 써보실랑가요”하면서 말끔한 한 기계를 하사했다. 지들은 문지르면서 받는 전화를 아직도 홀라당 제껴 까면서 통화하는 게 안쓰러웠나 보다. 어쨌든 흔히 말하는 ‘공폰’이 두 개나 생긴 거다.

사실 농사 짓다 보면 가끔 스마트폰이 아쉽기는 하다. 고추에 이상한 증상이 보인다거나 감자 잎이 누래지거나 하면 남들은 농약방 가서 진단과 처방을 받지만, 그럴 수는 없고 뭔가 다른 방안을 대신 해줘야 할 때가 문제다. 그 자리에서 알아보고 빨리 어떻게 해주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아는 사람한테 전화로 물어보는 것도 한 두 번이지, 그 사람도 뻔히 일하고 있을 시간인데다 흙 묻은 손으로 전화 받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머리 속에 기억했다가 집에 와서 인터넷에 바로 물어봐야 하는데, 정작 집에 와서는 머리에 물이 닿는 순간 두피 안쪽까지 깨끗해져 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간혹 어쩌다 퍼뜩 생각이 나서 컴퓨터를 켜고 나면 포털사이트 대문에서 바로 샛길로 빠진다. 충격, 황당, 헉, 이럴 수가, 00했더니…, 뭐 이런 뻔한 단어에 낚여 돌아다니고 눈을 빨갛고 맑게(?) 해주는 사진들 좀 보다 보면 ‘여긴 어딘가, 나는 누구인가’가 된다. 한참 방황한 뒤 왜 컴퓨터를 켰는지는 생각도 안 해보고 ‘종료’ 버튼을 누른다. 정말로 끄겠냐고, 볼일 다 봤냐고 자상하게 확인하며 한 번 더 물어봐 주는데도 확신을 가지고 ‘yes’를 누르고는 바로 잔다. 그러고는 다음날 농장 가서 다시 변함없는 고추와 감자를 본다.

어쨌든, 들고 나가서는 쓸 수도 없는 가정식 스마트폰이지만 쓰다 뺏기지 않으니 좋았다. 검색속도는 컴퓨터보다 빨랐고, 동영상도 팍팍 돌아갔다. 두 기계에 이미 깔려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정말 별게 다 있다. 세상에 모든 기계가 손바닥 안에 다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이 놈 때문에 망해 나가는 회사들이 눈에 선했다. 게임이라고는 ‘어떤팡’도 못하는 겜맹이지만 남들 두 배 만한 내 손가락을 정확히 느껴주는 게 신기하고 고마웠다. 자리잡고 앉아 노트북으로만 가끔 들어가보던 얼굴책을 침대에 누워서 볼 수도 있었다.

최근 농촌에서도 SNS를 이용한 판매에 관심이 늘고 있다. 지자체에서 교육도 활발히 하고 있고, 젊은 농부들 중에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적잖은 매출을 올렸다는 얘기도 들린다. 나도 아직꺼진 봉투에 편지 넣어 꾸러미와 함께 보내는 걸 더 좋아하지만, 언제까지 혼자 좋다고 그럴 수만은 없다. 적절한 소통도 해야 하고, 회원들의 의견도 축적해야 할 필요도 느끼고 있다.

동네에서도 젊은 축에 속하는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많이 쓰는 편이다. 그렇다고 꼭 기계에 매달려 사는 건 아니다. 한 친구도 지난 달 변기에 물에 젖어 망가진 스마트폰을 버리고 공책만한 단말기를 장만했다.

겨울철 마을회관은 주로 할머니들의 사랑방이지만 젊은 청년들의 아지트 역할도 한다. 여기서의 청년이란 만65세 이하를 가리킨다. 회관 입구의 신발만큼 다양한 얘깃거리가 오간다.
겨울철 마을회관은 주로 할머니들의 사랑방이지만 젊은 청년들의 아지트 역할도 한다. 여기서의 청년이란 만65세 이하를 가리킨다. 회관 입구의 신발만큼 다양한 얘깃거리가 오간다.

그 친구에게 “이왕 새 거 샀는데 SNS 한 번 제대로 해봐. 옆 동네 H는 물건 제대로 팔아먹더만” 했더니 “에쎈 뭐? 그게 뭐여. 담배여?” 하더니 휴대폰을 찾는다. “에이 또 차에 놓고 왔네.” 트럭에서 전화기를 들고 오는 친구한테 한마디 했다. “야, 넌 전화가 카폰이냐? 전화해도 통화가 돼야 말이지. 지 엉덩짝만한걸 사갖구. 뭔 톡톡이니 스토리니 그런 건 안 해?” “난 잘 몰라. 그런 거 귀찮아서 안 해.” “그럼 뭐할라구 샀대. 그걸루 음악이라도 듣냐?” “음악을 뭐할라구 이걸루 들어. 장터에서 5만원 주고 라디오 샀는데 아직 같은 노래 한 번 두 안 나왔구만.” 라디오 모양의 기기에 3천곡 정도 가요를 저장해서 파는 걸 말하는 거다. 전화는 그냥 전화일 뿐이라는 태도다.

보아하니 아무래도 도시 놈들이 기계를 잘 써먹는다. 엊그제 후배들이 내려와서 구례 관광을 좀 하다 갔는데 성삼재니 피아골이니 다니면서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걔들도 나랑 비슷하게 팔 짧고 얼굴 커서 셀카에 불리한 조건이 분명하건만, 굳이 그 얼굴 세 개를 다 넣어서 찍으려고 참 애도 많이 썼다. 확인해보면 태반이 가장자리 사람 태반은 눈이 한 짝씩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뭐라도 요기 좀 하려고 식당에 들어가면 음식 나오자마자 또 찍고, 찍은 사진 올리고, 댓글에 또 댓글 달고, 기계만 들여다 보면서 낄낄댔다. “야, 니들 나 보러 온거냐 아니면 구례 중계 방송하러 온거냐. 얼굴 보고 얘기 좀 하자 엉!” “아, 형 미안해요. 얘들이 형 보고 싶대요. 형이 여기다 댓글 좀 달아줄래요?” “잘 지낸다고 니가 쓰고 이거나 먹자. 이러다가 니들 맘먹고 여기 와서 사진 찍고 올린 기억밖에 더 나겠냐!” “그러게요”하면서도 고개는 들지 않았다. 그렇게 내내 그러다가 올라갔다.

어떤 인문학자가 말하기를,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긴 하지만 가족을 단위로 생활해왔는데 대가족제가 무너지면서 외로움을 느끼게 됐고, 작금의 사회적 현상은 이러한 외로움을 이기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했다. 누군가와 연결돼있지 않으면 고립감을 느끼다가 불안해 하고, 소외됐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는 얘기다. 당연한 현상이지만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된다는 거다.

요물은 필시 요물이다. 호시탐탐 TV를 노리던 아들도 비교적 늦었다는 중3에 스마트폰을 사 준 다음에 애가 변했다. 웬만하면 방에서 안 나오려고 하고 잔다고 불 끈 뒤에도 이불 뒤집어 쓰고 기계에 열중했다. 구입하기 전에 ‘스마트폰 사용 10계명’까지 정해서 서명까지 했건만 별 무소용이었다.

얼마 전엔 마루에 있는 컴퓨터 바탕화면에 뭔가 다운을 받아놓은 흔적이 있었다. 열어보니 밤에 보는 건지, 들에서 보는 건지 출처를 알 수 없는 동영상이었다. 분명 기계에 옮겨 담았을 것이고, 뜨거운 청춘을 조절하는데 이용할 것이었다. 뭐라고 하진 않았다. 나도 그맘때 친구들과 학교에서 사진을 감상하다가 선생님들 어깨에 근육통을 남기는 수고를 안겨 드렸지만, 그런다고 딱 끊었던 건 아니니까. 대신 어디에서건 뒤처리는 깔끔하게 해 달라고 당부하는 것으로 아빠의 위엄과 심적 부담을 안겨줬다.

다행히 며칠 전 선재가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피쳐폰으로 바꾸겠다는 고마운 선언을 했다. 지가 생각해도 조절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연신 딸꾹 쇠를 내며 자기 좀 둘여다 봐달라는 소리를 외면하는 건 내가 봐도 쉽지 않은 일이다. 메시지를 많이 쓸 수 있게 해 달라는 조건은 붙었지만 얼마든지 환영할 만한 계약이다.

씻고 나와서 잠자리에 누워 기계를 보며 이것 저것 누르다 보니 나한테 딱 맞는 게임 하나를 찾았다. ‘스도쿠’라고 몇 년 전 책까지 사서 문제를 푸는데 열중했던 퍼즐이다. 화장실에 앉아 볼펜으로 메모해가며 변비까지 불러올뻔한 게임인데 다운받아 보니 그렇게 예쁘고 편할 수가 없다. 온라인이 아니라도 할 수 있으니 농막에 앉아서도 능히 즐길 만 했다.

내가 애용하는 ‘수도쿠퍼즐’은 스마트폰 사용빈도의 몇 손가락 안에 꼽힌다.
내가 애용하는 ‘수도쿠퍼즐’은 스마트폰 사용빈도의 몇 손가락 안에 꼽힌다.

옛 실력이 줄지 않았음을 확인하며 빠져들었다. 최고 수준의 문제를 어렵게 풀어가면서 스스로 대견해 했다. 졸음을 참아가며 한 시간 정도 하다 보니 담배가 댕겼다. 볼일은 없었지만 한 대 피울 겸, 기계를 들고 화장실로 갔다. 선 채로 담배를 문채 기계를 들고 문제를 풀어나가자니 손이 모자랐다. 변기 뚜껑을 열고 의자 삼아 앉았다. 널찍한 허벅지에 올려놓고 하니 편했다. 이리 저리 숫자를 넣어 보고 빼보고 해도 풀리질 않았다. 신경이 쓰였나 배가 살살 아팠고,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힘을 줬다. 그리고는 바로’ 아차’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알았을 땐 이미 늦었다. 의자에 앉으며 바지 내리고 앉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빨래를 널면서 생각했다. ‘이게 사람을 정신 없이 홀리는구나. 요물을 넘어 귀신이여 귀신.’

참 나. 단단히 홀렸나 보다. 지 탓이 아니라 귀신 탓이란다.

前 한국일보 기자 cameragag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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