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나를 다독이는 것 같기도 하고 추궁하는 것 같기도 하다. 빗방울 안에는 “너 잘하고 있어!”와 “너 이렇게밖에 못해?”라는 말이 둘 다 담겨 있는 듯하다. 느낌표로 떨어지던 물방울은 마지막에 자세를 바꿔 물음표를 그리며 고이기도 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그리하여 비가 그쳤을 때에는 길 위에 뿐만 아니라 내 마음에도 웅덩이가 생긴다. 때마침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홀짝이고 있자니 오늘의 빗소리는 마냥 다독임 같다. 그 동안 응어리진 울분이 차츰 잠잠해지고 있다. 그러나 어떤 날에는 빗소리가 나를 못 견디게 만들기도 한다. 그때는 내가 이 시간에 외따로 존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잊고 있었던 잘못들이 하나둘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 어젯밤부터 내리던 비는 나를 확실히 다그치는 것 같았다. “비(非) 비(非) 비(非)!” 떨어지며 “잘못됐어, 잘못됐어, 잘못됐다구!”라고 나를 한동안 몰아붙였다. 이처럼 마음 상태에 따라 빗소리는 다르게 들린다. 자장가처럼 들리는 날도 있고 장송곡처럼 들리는 날도 있다. 빗소리를 들으며 나는 비로소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빗소리가 만들어내는 리듬에 맞춰 어디론가 향하는 상상을 한다. 그럴 때면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선명해진다. 첫 봄비가 내릴 때, 내 마음에도 거짓말처럼 새싹이 하나 움텄으면 좋겠다. 그때는 밖에 나가 빗소리를 온몸으로 들을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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