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생활고 등 참작 사유 안 돼, 위험 노출 가족은 사회가 보호해야
존속(부모)에 대한 살인이 가중처벌을 받는 반면 법원이 자식을 살해한 부모에 대해서는 남은 자녀의 양육 및 생활고 등을 감형 사유로 들고 있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어린 자녀를 살해한 범죄를 엄중하게 처벌할 필요성과 함께, 위험에 노출된 가족을 범죄자에게 다시 맡길 것이 아니라 사회가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원지법 형사합의2부(부장 한주한)는 2007년 3월 생활고에 시달린 끝에 자살을 결심하고 당시 12살 난 딸의 반항을 제압하고 목 졸라 숨지게 한 곽모(52)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혼자 힘으로 두 자녀를 양육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데 따른 무거운 부담감과 정신적인 스트레스 속에서 괴로워했다"며 "(혼자 남게 될) 딸의 처지가 걱정돼 같이 죽어야 한다는 생각에 살해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 범행 동기에 다소나마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곽씨에게는 아직 10살의 어린 아들이 있어 어머니인 피고인의 보살핌이 필요하다"며 곽씨의 양형에 유리한 사정으로 덧붙였다.
강도를 당한 것처럼 위장해 아내를 죽이고 젖먹이 자식들을 방치한 아버지가 부양 책임을 이유로 감형을 받기도 했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문용선)는 2013년 9월 고부간 갈등과 경제적 문제 등으로 말다툼을 벌이다 아내를 짓밟고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이모(34)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씨에게는 부양해야 하는 어린 세 딸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원심의 형이 너무 무겁다"고 밝혔다. 범행 후 이씨는 발각될 것이 두려워 아이들을 방치한 채 현장을 떠났고 당시 한 살이었던 막내 딸은 숨진 어머니의 젖을 빨아야 했다.
지난해 12월 대전고법은 딸을 1m 길이의 목검으로 폭행해 숨지게 한 강모(39)씨에게 원심과 같이 징역 6년을 선고하면서 "강씨는 가해자인 한편 자신의 잘못으로 친딸을 잃고 평생 죄책감과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할 아버지"라며 검사의 양형부당 주장을 기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범죄자에게 다시 부양의 책임을 지우는 법원의 인식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위험에 빠진 자녀들을 사회가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법원은 남은 가족을 돌보도록 하기 위해 그 사정을 참작한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피고인들은 이미 부양 의지도, 능력도 없는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며 "가장으로서의 책임이라는 명분하에 가족만을 강조하는 것은 국가가 피해자에 대한 보호 의무를 저버리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양형 기준 적용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차미경 한국여성변호사회 사무총장은 "한국적인 가족중심주의나 가부장적 시각이 미성년 자녀에 대한 살인사건의 양형에도 감경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동반자살을 빙자한 자녀살해 사건이 빈발하는 상황에서 예방효과를 위해서라도 법원의 양형요소 기준을 교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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