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 중에 ‘망신살이 무지갯살 뻗치듯 한다’는 말이 있다. 더할 수 없는 큰 망신을 당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원망을 듣는다는 뜻이다. 지난해 한국 체육계가 바로 이 모습이었고 이 곤혹스러운 상황은 새해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지난 12일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문화체육관광부 인사개입 의혹에 단호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래 체육계와 인연을 맺어온 사람으로서 참으로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체육계 혁신이라는 본질이 개혁과는 무관한 불필요한 논란 때문에 흐려지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조금씩 분위기가 잡혀가는 체육계의 비리 근절 움직임이 이런 논란으로 결코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
지난해 우리는 2014 소치동계올림픽에서 한때는 대한민국의 자랑이었던 빙상스타가 러시아 국적으로 금메달을 따는 과정을 안타깝게 지켜봐야 했다. 태권도 사범이자 한 선수의 아버지였던 이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심판의 부당 판결에 항의해 “비리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내가 죽는 수 밖에 없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택견계의‘대부’로 칭송받던 전 대한택견연맹회장은 13억 여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상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정부가 태권도 선수 아버지의 자살을 계기로 체육계에 ‘스포츠 4대악 근절’이라는 개혁의 ‘메스’를 들이대자, 여기저기서 그 동안 방치되고 곪아오던 상처들이 터져 나왔다.
연말에 발표된 정부의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 및 합동수사반 운영 중간수사 결과’를 보면 비단 태권도와 택견 뿐 아니라 야구, 축구, 복싱, 빙상 등 30개가 넘는 종목들에서 200건이 넘는 비리 신고가 접수됐다. 그리고 이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공금횡령과 승부조작, 계파갈등 등 입에 올리기에도 민망한 체육계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체육계에 ‘비리 백화점’이라는 오명이 붙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 아직 체육계 내부의 자정 노력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체육계가 정쟁의 희생양이 됐다’는 등 가십성 얘기에 천착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근거 없는 의혹에 주목하면서 혁신의 본질을 흐려서는 곤란하다. 지금은 체육계가 각종 부조리를 털고 보다 발전적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힘을 합쳐 전력질주 해야 한다.
지금 체육계에 필요한 것은 첫째도 개혁, 둘째도 개혁이다. 한국 체육은 몇 몇 스포츠 스타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시스템을 통한 종합적 발전 방향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그 틀의 연장선이자 확장된 모습으로 문화융성 시대 생활체육을 꽃피워 가야 한다.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더 나아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향한 전 국민의 기대가 체육계의 어깨에 달려있다. 무엇보다 자라는 꿈나무들에게 스포츠 정신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가르치고 보여줘야 하는 책무가 체육계 앞에 놓여있다.
다행히 개혁의 첫걸음은 시작됐다. 비록 그 시발점이 체육계 내부가 아닌 정부 주도였다는 점이 아쉽긴 해도 조금씩 환부가 드러나면서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모두의 공감이 형성된 점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이제는 체육계가 스스로 변해야 할 때이다. 정부도 제도 개혁 등을 통해 지속적인 협력을 약속한 만큼 체육계 내부의 변화로 개혁의 큰 그림을 완성해야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전국 각지에서 체육 꿈나무들이 열심히 땀 흘리며 스포츠의 가치를 익히고 있다. 파벌, 승부조작 등의 이름으로 어린 꿈나무들의 희망과 의욕이 꺾이는 일도, 스포츠 정신이 훼손되는 일도, 그리고 체육인의 자긍심과 명예가 상처받는 일도 두 번 다시 생겨서는 안될 일이다.
강신욱 단국대 국제스포츠학과 교수ㆍ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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