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대신 결정을 해주면 좋겠다는 앱이 만들어 지고 있다. 2015년 트렌드에도 등장하는 ‘햄릿증후군’에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햄릿증후군이란 세익스피어 작품의 주인공 햄릿처럼 어떤 기로에 섰을 때 과도하게 우유부단한 ‘선택 장애자의 심리’를 의미한다. 앱은 이걸 해결해 보겠다는 것이다.
물론 점심시간에 “무엇을 먹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 고르기는 때로 즐겁기보다 골치 아픈 과업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아무거나 먹자”라고도 하고, 한 때 어느 식당은 ‘아무거나’ 또는 ‘대충’이라는 난데없는 메뉴까지 만들어 놓기도 했다. 자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를 원천적으로 해결해 주겠다는 ‘짬짜면’도 따지고 보면 햄릿증후군 해결책의 하나인 셈이다.
그야말로 정보 과잉시대이다 보니 선택이 도리어 어려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무엇을 먹을 것인지, 어떤 옷을 입을 것인지, 간단하고 소소한 일상의 문제뿐 아니라 심지어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를 계속해서 만날 것인지 말 것인지 까지도 불특정 다수에게 묻는다. 이건 상담의 수준을 넘어섰다. 자기주관과 가치관을 잠식당한 채 타인의 삶에 끌려가듯 선택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나는 모양이다.
딸아이의 SNS에서도 마찬가지다. “앞머리를 내리는 게 나을까?”라며 친구들의 의중을 묻는 질문이 자주 오르고 내려진다. 특히 반드시 읽으라는 ‘필독’을 걸면 친구들은 ‘좋아요’ ‘슬퍼요’ 등의 반응을 표시한다. 느낌을 안 달아주면 소외감이 생겨 아예 질문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타자의 반응과 응답이 없으면 끝없이 불안감을 느낀다.
이처럼 선택과 결정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메이비(Maybe) 세대, 잠이 오지 않을 때 양 하나, 양 둘, 양 셋을 세고 있는 모습에서 빌려와 평범한 일상, 결단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카운트 십(Count Sheep)’은 왜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결국 다수가 선택한 것이 안전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게 요즘 대세라며?” 이른바 대세주의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세로 여겨지는, 주류를 벗어나는 것은 실패이며 낙오로 받아들인다. 실패를 능멸하는 사회에서 시행착오와 손해를 어떻게든 보지 않겠다는 욕망도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라 좌절의 시작이라는 논법이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이런 사회적 태도를 부추기는 디지털 공간이 확장되고 있다. 인터넷포털, SNS에는 각종 질문들이 쏟아지고 즉각적으로 답이 나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질문자는 나의 판단이 아닌, 대세를 결정하는 주류의 선택을 본다. 그 주류를 따라가면 실패하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발전은 한때의 대세가 주변이 되고 변방이 주류가 되기도 하는 과정의 반복이기도 하다. 주류만이 계속 힘을 쓴다고 믿는 사회구조에서는 발전의 동력이 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기대하기 힘들다. 개인의 성장도 마찬가지다. 반 고흐는 당시 사회에선 인정받지 못한 그림을 그린 것이지만 사후 재평가돼 세계적인 작가가 됐다. 피카소의 큐비즘도 처음엔 화단의 매몰찬 경멸이 있었지만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남과 다른 선택, 그리고 실패에 주눅이 들 필요가 없다. 그래야 새로운 도전에 자신을 거는 용기가 뿜어져 나온다. 기쁨도 남에 의해 선택되어지고 나아가 지배당한다면 어느 날 그 기쁨은 세뇌와 착각의 결과에서 온 것임이 드러날 것이다. 타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한 경우가 있지만 남의 선택에 의해 결정을 유보하는 사람, 선택을 남에게 미루는 사람은 결국 결과를 책임지지 못하고 주도적인 삶을 살 수가 없다. 그건 진정한 나를 잃어버리는 모습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비로소 소중한 것을 얻는다. 그러자면 스스로 선택하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 나가는 습관이 절실하다.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는 사회가 그렇게 해서 태어난다. 남과 다름도 인정하고, 실패에 박수를 쳐주는 곳에서 개성이 다채로운 사람들이 우리사회를 보다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안진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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