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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공불락 거대 직벽… 인간의 집념 앞에 고개 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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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공불락 거대 직벽… 인간의 집념 앞에 고개 숙이다

입력
2015.01.15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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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등반가 2명, 엘 캐피탄 914m '돈 월' 맨손으로 첫 등정

토미 코드웰이 1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있는 바위산 엘 캐피탄의 미개척지 '돈 월' 코스를 19일만에 보조 장비 없이 맨손으로 정복한 뒤 환호하고 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AP 연합뉴스
토미 코드웰이 1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있는 바위산 엘 캐피탄의 미개척지 '돈 월' 코스를 19일만에 보조 장비 없이 맨손으로 정복한 뒤 환호하고 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AP 연합뉴스

“손끝에 피부가 얼마나 남아있는 지가 우리의 성패를 좌우했다.”

토미 코드웰(36)의 아홉 개의 손끝은 마치 투르 드 프랑스(프랑스 일주 사이클대회)를 완주하고 터져버린 자전거 바퀴처럼 찢기고 갈라져 있었다. 코드웰은 14일(현지시간) 동료 케빈 조거슨(30ㆍ이상 미국)과 함께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화강암 절벽 엘 캐피탄(El Capitan)을 맨손으로 오르는 데 성공했다. 뉴욕의 초고층 빌딩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3개를 쌓아 놓은 것과 맞먹는 엘 캐피탄의 수직에 가까운 암벽은 높이가 989m에 달한다.

뉴욕타임스와 가디언, AP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 27일부터 19일 동안 엘 캐피탄 암벽 가운데 지금까지 인간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은 ‘돈 월’(Dawn Wallㆍ동트는 벽ㆍ914m)코스를 ‘프리클라이밍’(Free climbingㆍ장비에 의존하지 않고 맨몸으로 암벽을 오르는 것)으로 이날 오후 3시 25분에 정상 고지를 밟았다. 오직 손과 발만을 사용했고, 로프는 추락을 대비해 착용했다. 프리클라이밍으로 엘 캐피탄 암벽 중에서도 가장 악명이 높은 돈 월 정복에 성공한 것은 이들이 처음이다.

극한의 도전은 요세미티에 땅거미가 내려앉고 나서야 시작됐다.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고 나면 돈 월의 벽은 차갑게 식었다. 그들의 손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손바닥에 땀이 나지 않도록 저녁 무렵부터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존해 바위를 타기 시작했다.

깊은 밤이 되면 허공에 매달린 텐트에 몸을 뻗어야 했다. 손끝을 쉬게 해주기 위한 잠깐의 휴식이었다. 그 짧은 시간 조차 조각 잠을 자야 했다. 코드웰은 “엘 캐피탄은 바람이 많이 불고, 추운데다가 매우 건조하다. 밤에 두 번이나 일어나서 손에 로션을 발라야 했다”고 말했다.

공중에 매달린 텐트에서 수면과 식사를 해결했음은 물론이다. 통조림으로 끼니를 해결했으며 때때로 위스키를 곁들였다. 소변은 허공에서 처리했으며 대변은 봉투에 담아 주변에서 대기 중이던 스태프들에게 건네줬다.

코드웰은 2001년 톱질을 하다가 왼쪽 두 번째 손가락을 잃었다. 당시 의사가 손가락 접합 수술을 하면 다시는 등반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코드웰은 10개의 손가락으로 등반을 하지 못하느니, 9개의 손가락으로 암벽을 타는 삶을 선택했다.

이후 코드웰은 엘 캐피탄을 맨손으로 등반하겠다는 생각을 떠올렸고, 2009년부터 조거슨과 마음을 맞춘 코드웰은 모비딕(허먼 멜빌의 소설에 등장하는 초대형 흰 고래)을 쫓듯 5년 동안 훈련에 매진했다. 두 사람은 매년 가을과 겨울을 엘 캐피탄에서 지새우며 꿈을 이룰 날을 기다렸다. 코드웰은 이밖에 2000년 키르기스스탄에서 납치사건에 휘말린 적도 있었다. 그는 당시 암벽 등반을 하던 중 동료 3명과 함께 국제테러조직인 알카에다와 연계된 우즈베키스탄계 이슬람조직에 붙잡혀 수주 동안 인질생활을 하기도 했다.

거대한 캔버스와 같은 돈 월은 32개의 구간으로 나눠져 있다. 두 사람은 캔버스에 점을 찍듯 31개의 정점에 다다를 때마다 잠시 휴식을 취했다.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돈 월은 이들을 시험에 들게 했다. 손끝과 발을 얹을 수 있는 바위 조각은 점점 작아졌고 면도날처럼 날카로워졌다. 손가락이 찢어져 이틀 동안 허공에 매달린 채 상처가 낫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지난주 조거슨은 가장 까다로운 구간으로 꼽히는 15구간에서 도전에 실패할 뻔했다. 조거슨은 무려 7일 동안 11번의 추락을 감내해야 했다. 사투끝에 15구간을 빠져 나온 조거슨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쁨을 토해내기도 했다.

성공의 순간은 더 없이 달콤했다. 날씨마저 이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도왔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코드웰과 조거슨이 암벽이 아닌 평지를 밟았을 때 가족들이 이들을 맞이했다. 거의 20여 일만에 코드웰은 부인을, 조거슨은 여자친구를 품에 안았다.

1958년 처음 루트가 개척된 이후 지금까지 엘 캐피탄 암벽을 오르는 코스는 약 100개에 달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로프와 고리못을 사용한 경우였고, 프리클라이밍에 성공한 경우는 10여차례 뿐이다. 특히 돈 월은 그 중에서도 가장 험난한 구간으로 꼽혀, 전세계 암벽 등반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1970년 등반가 두 명이 고리못과 로프를 사용해 돈 월 정복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27일이나 걸렸다.

코드웰은 “나는 큰 꿈을 꾸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탐험가가 되어 방법을 찾는 것을 즐긴다”며 이토록 무모한 도전에 뛰어든 이유를 밝혔다. 이어 그는 “며칠간 모든 것들에 경고 딱지가 붙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들이 마치 내 가슴에 불을 붙인 것 같았다”고 말했다. 조거슨은 이번 도전에 대해 “내가 참가하고 마침표를 찍은 가장 대담한 프로젝트였던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트위터 계정을 통해 코드웰과 조거슨에게 축하의 뜻을 전하면서 “이 두 사람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상기시켜 줬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현주기자 memor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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