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소 측 항소 다반사… 혼란 가중, 통상임금서 상여금 제외하려 꼼수
취업규칙 바꾼 사업장 수백곳 달해 "노사정 논의 통해 조속히 입법해야"
통상임금은 연장근로, 휴일근로 등 각종 수당을 계산할 때 기준이 되는 임금이다.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통상임금과 관련해 세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지급시기가 1개월이 넘더라도 정기적으로 지급했는지(정기성) ▦가족수당ㆍ직무수당처럼 일정 요건을 갖추면 지급했는지(일률성) ▦지급대상과 지급액을 사전에 제시해놓고 재직 여부에 관계없이 지급했는지(고정성) 등을 충족하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일선 법원의 통상임금 판단 기준이 제 각각이어서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15일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진행된 통상임금 주요 소송 18건을 분석한 결과 14건은 ‘상여금을 중도 퇴직자에게도 지급했느냐’(고정성)로 통상임금 포함 여부를 판단한 반면 르노삼성 등 4건은 상여금 지급방식이나 노사 합의여부 등을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며 “대체로 대법원 기준에 따라 판결을 내렸지만 판사 개인의 성향, 가치 판단에 따라 판결이 달리 나오면서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6월 서울남부지법은 대한항공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2개월마다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은 15일 이상 결근한 경우 지급하지 않았다’며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이 제시한 통상임금 기준 중 고정성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부산지법은 르노삼성자동차 소송에서 ‘사측이 2개월마다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을 중도 퇴직자에게 지급하지 않았지만, 고정성이 없다고 볼 수 없다’며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다.
통상임금 소송이 대부분 하급심 판결로 끝나지 않고 3심까지 올라가는 추세라 현장 혼란이 더 가중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취지와 다른 판결이 잇따라 나오면서 하급심에서 패소한 쪽에서 불복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르노삼성 노사는 지난해 임금단체협상에서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여부를 법원 판단에 따르기로 했지만, 사측이 패소한 후 “대법원 판결과 다르다”며 항소하면서 갈등만 깊어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취업규칙 변경 등을 통해 각종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시키는 ‘꼼수’를 부린 사업장도 최소 수백 곳 이상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통상임금 대법원 판결 이후 지난해 4월까지 고용노동부에 제출된 취업규칙변경신고 중 724건을 조사한 결과 노동자에게 불리한 내용을 포함한 변경신고가 538건에 달했다. ‘상여금ㆍ수당에 재직자 요건을 포함’(37.1%)하거나 ‘상여금 자체를 축소 또는 삭제’(26.8%)하고, ‘상여금을 성과금이나 명절수당으로 변경’(26.8%)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빼는 방식으로 취업규칙을 바꿨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2월 ‘통상임금 노사 지도 지침’을 발표하며 “근로기준법령 개정 및 관련 예규 정비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지침의 강제성이 없다. 또 당정협의를 거쳐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이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통상임금 예외 기준을 대통령령으로 지정하도록 했다는 이유로 노동계가 거세게 반발해 국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장 혼란을 최소화하려면 노사정 논의를 통해 가장 빠른 시간내에 관련 입법을 마무리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