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 정오,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어김없이 수요집회가 열린다. 미야자와 일본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1992년 1월 8일 첫 집회를 가진 후 23년의 세월 동안 1161회를 이어왔다. 일본군 위안부할머니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보다 한해 전,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실명을 내세운 김학순 할머니의 피맺힌 증언으로 촉발됐다. 소송이 시작됐고 김 할머니의 용기에 힘입어 더 많은 피해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대중 앞에 털어놓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97년 12월, 알뜰히 모은 돈 2000만원을 불우이웃에 기탁하며 “일본정부의 사과를 꼭 받아내 달라”는 유언을 남긴 후 고통 없는 세상으로 떠났다. 1992년 1월 13일 한국일보 신상순기자는 서울 탑골공원에서 정신대 피해보상 촉구를 외치며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김학순 할머니의 한과 고통을 사진에 담아 그 해 한국보도사진전 특별상을 수상했다.
손용석 사진부장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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