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英서 종이책 선전
여전히 미래 어두운 서점
영국 최대 서점 체인인 워터스톤스는 지난해 12월 책 판매량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5% 늘었다고 최근 발표했다. 영국의 또 다른 서점 체인 포일스도 같은 기간 판매량이 8% 증가했다. 크리스마스 연휴가 있는 12월은 영국 서점가의 전통적인 대목이다. 워터스톤스와 포일스의 12월 판매량 증가를 영국 출판업계는 반기고 있다. 바닥 모르게 추락하던 종이책과 서점업계가 드물게 반등의 기회를 잡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워터스톤스의 최고경영자 제임스 던트는 “상황은 힘겨우나 우리는 이제 바닥에 이르렀다”며 파이낸셜타임스에 서점업계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나타냈다.
대서양 건너서도 출판업자들의 눈이 커질 소식이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서점 체인 반스 앤 노블은 지난해 판매 하락세가 멈춘 데 이어 올해도 지난해 수준의 판매량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스 앤 노블의 주가를 곧바로 5%나 오르게 만든 뉴스였다.
서점이 사라지고 전자책이 득세할 것이라는 오랜 예측은 이제 상식이다. 미국의 거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이 출판업계의 절대강자가 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기정 사실이 되고 있다. 다국적 경영컨설팅회사인 PwC는 2015년은 영국에서 전자책 판매량이 종이책을 뛰어넘는 첫해가 될 것이라고 2년 전 예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예상과 반대되는 현상이 최근 영국과 미국 출판업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종이책 판매량이 늘어난 반면 전자책 판매는 정체에 빠졌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통적 인쇄 방식의 종말이 임박했다는 인식은 과장됐다며 종이책과 서점의 반격을 최근 보도했다.
도서판매집계기관 닐슨 북 스캔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종이책 판매량은 전년보다 2.4% 증가해 6억3,500만권을 기록했다. 2년 연속 증가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종이책 판매량이 전년에 비해 1.3% 줄었으나 6.5%나 하락했던 2013년보다는 양호했다.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 감독 알렉스 퍼거슨 경의 자서전 같은 대형 베스트셀러가 없었던 해라는 점을 감안하면 종이책 시장은 그리 나빠지지 않았다는 분석이 따른다.
종이책의 선전은 젊은 소비자들의 응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성인 소설 판매량은 8% 떨어진 반면 청소년 소설의 판매량은 12%나 급증했다. ‘트와일라잇’시리즈의 성공으로 시장성을 확인한 청소년 소설은 ‘다이버전트’시리즈와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영국에서는 어린이책이 지난해 판매량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청소년은 CD나 DVD, 잡지, 신문 등 전통적 매체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고정관념에 배치되는 결과들이다. 경영컨설팅회사 딜로이트의 매체분석가 폴 리는 “종이신문이 종이신문과 함께 자란 세대에서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종이책은 모든 세대에서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닐슨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13~17세는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선호한다. 종이책을 좋아하는 부모들이 신용카드가 없어 온라인에서 전자책을 구입할 수 없는 자녀들을 위해 종이책을 대신 사주면서 나타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닐슨은 “책을 구입하기보다 빌려서 돌려보는 10대들의 성향이 반영된 것 일 수도 있다. 종이책이 그들에게는 더 편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가격에 그리 민감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시각물이 풍성한 책에 투자를 더 많이 하고 전자책으로 읽어도 무방한 공상과학물이나 로맨스물의 제작단가를 낮추는 출판계의 경영 방식도 청소년들의 종이책 애호에 영향을 미쳤다.
종이책에 비해 전자책의 성장세는 예상보다 더디다. 딜로이트의 최신 예측에 따르면 올해 전세계 출판시장의 80%가 인쇄물이다. 전자책이 곧 시장의 반을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들이 아직 실현되기는 너무 이른 셈이다. ‘킨들’로 대변되는 전자책 단말기의 판매량도 2011년 정점을 맞은 이후 늘지 않고 있다.
전자책의 최근 판매 부진을 바라보는 미국 출판사들의 심경은 복잡하다. 미국의 경우 전자책이 출판사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5년 동안 미국의 전자책 매출은 30억달러였다. 전자책 시장의 성장으로 생산비와 유통비를 줄여 이익을 많이 남길 수 있다고는 하나 공룡업체 아마존에게 종속될까 하는 우려가 출판업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종이책과 서점의 최근 분투에도 불구하고 서점의 미래는 여전히 어둡다. 워터스톤스는 수백만 파운드를 들여 영국 전역 290개 지점의 시설을 새로 단장해 카페를 들이고 지역 문화 거점으로 육성하려고 하고 있다. 반스 앤 노블은 LP판이나 수제 맥주 제조기를 부록으로 주며 소비자들의 발길을 잡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딜로이트의 2015년 예측 보고서는 “종이책의 온라인 판매가 여전히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