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성·도덕성·자율성·정신건강 초등 6학년 후 학년 오를수록 후퇴
우리나라 학생들은 학년이 오를수록 언어와 수리 등 인지능력은 향상되지만 도덕성ㆍ시민성ㆍ자기정체성 확립 등 민주 시민에게 필요한 역량은 오히려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입시에 몰입한 주입식 경쟁 교육의 한계가 확인된 것으로, 근본적인 교육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14일 한국교육개발원의 ‘2014 학생역량지수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언어능력ㆍ문제해결력ㆍ정보통신기술(ICT) 활용능력을 평가한 인지역량은 학년이 오를수록 높아졌다. 언어능력 평가 결과 중3 학생들의 평균점수는 14.23점(20점 만점)이었고, 고1은 15.52점, 고2는 15.73점으로 꾸준히 올랐다.
하지만 인지능력을 제외한 나머지 사회적ㆍ자율적ㆍ건강역량 평가에서는 고학년이 될수록 수준이 하락했다. 지난해 6월 실시된 조사는 전국의 초ㆍ중ㆍ고교 468곳의 재학생 1만3,390명(초6~고2)이 참여했고, 인지역량 평가에서만 초등생을 제외했다.
사회적 역량 부문의 시민성 평가에서 초교 6학년생은 평균 4.18점(5점 만점)을 받았지만 학년이 오를수록 점수가 낮아져 고2는 3.88점에 그쳤다. 사회적 역량 평가는 ‘재산ㆍ능력에 관계 없이 동등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 , ‘외국인 근로자도 우리와 똑같은 권리를 누려야 한다’ 등 차이를 존중하는 인식과 평등의식, 준법정신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 ‘매우 그렇다’ ‘매우 그렇지 않다’ 등 5개 보기 중 하나를 택하게 한 뒤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공동체 의식과 책임감을 평가한 도덕성 부문도 초교 6학년(4.14점) 이후 점수가 계속 낮아졌고, 고1에서 3.96점으로 반등했지만 고2(3.92점) 학생들은 다시 하락했다. 사회참여도 평가 역시 비슷한 결과를 나타냈다.
자율적 역량도 학년이 높아질수록 모든 부문에서 수준이 하락했다. 자기정체성 정립 수준은 초교 6학년이 4.03점으로 가장 높았고, 학습계획과 전략을 스스로 짜는 자기주도학습 역량 역시 초교 6학년이 최고점(3.43점)을 기록한 뒤 계속 낮아졌다. 연구 책임자인 교육개발원 강영혜 교육정책연구본부장은 보고서에서 “부모가 자녀의 학습계획을 세우고 진로까지 결정하는가 하면, 학교에서도 입시 위주 교육이 실시돼 수동적인 학습경험이 누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교육이 ‘반쪽 시민’을 양산한다고 지적했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시민성과 자기정체성, 차이를 존중하는 인식 등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필요한 역량이 학년이 오를수록 후퇴한다는 것은 전인교육 측면에서 우리 교육과정에 큰 결함이 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마포구의 한 고교 교사도 “상급학교 진학과 명문대 입학이 교육의 목적으로 변질되면서 인성과 도덕성 등 청소년 시기에 쌓아야 할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 셈”고 지적했다.
입시에 치인 학생들의 정신건강 상태도 좋지 않았다. 건강수준 평가에서 우울감은 고학년이 될수록 커졌고, 특히 스트레스의 악화 정도가 가장 심했다. 강영혜 본부장은 “실효성 있는 인성교육과 함께 학생들의 자율성을 높일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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