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분 상태 가라앉히는 게 중요, 대화 나누며 감정 분출 이끌어 내
주협상 요원·총괄 팀장 등 구성, 전국서 484명 전문 요원 활동
13일 오후 2시 20분 경기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다세대주택에서 벌어진 인질극 현장에 있던 경찰 지휘부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자수하겠다”고 한 인질범 김모(46)씨는 나오지 않고 갑자기 휴대폰마저 꺼졌기 때문이다. 인질로 잡혀 있던 큰딸의 휴대폰으로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지금 경찰특공대를 들여보내야 합니다.”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투입돼 김씨와 4시간 가까이 협상을 벌여온 신동천 경기경찰청 인질협상 전문대응팀장은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간다고 판단하고 결단을 내렸다. 자수 의사를 밝힌 인질범이 돌변해 인질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자포자기해 자살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김씨는 경찰특공대 진입 5분 만에 별다른 저항이나 자해 없이 검거됐다. 신 팀장은 “내부 상황이 급변할지 몰라 진압작전을 실행할 수밖에 없었다”며 “인질범과 협상팀 간 공감대가 형성돼 좀 더 대화를 하면 진압작전 없이 마무리될 수 있었는데 아쉽다”고 안타까워했다.
경찰의 인질협상 전문대응팀은 인질극에서 문제 해결의 성패를 좌우한다. 경찰청은 지난해 7월 각 지방경찰청에 인질협상 전문대응팀을 신설, 서울경찰청 74명 등 전국에 총 484명이 전문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서울 강남의 한 호텔 객실에서 분신자살하겠다며 경찰과 대치한 박모(49)씨 사건, 지난해 8월 수해 보상에 대한 불만으로 휘발유와 부탄가스를 실은 차량을 타고 충남 아산시청 현관을 들이받고 경찰과 대치한 김모(46)씨 사건도 이들 전문대응팀이 해결했다.
인질협상 전문대응팀은 인질범과 직접 협상을 하는 주 협상요원, 인질범과의 대화 내용을 조율하는 보조 협상요원, 총괄팀장 등 최소 3명으로 구성된다. 안산 인질극에서는 신고 접수 후 처음부터 김씨와 접촉한 안산시 상록경찰서 염규호 경위가 주 협상요원을 맡고, 신 팀장과 경기경찰청 형사과장이 합류해 팀을 이뤘다. 이종화 경찰대 위기협상연구센터장 교수는 자문을 맡았다. 협상 경험이 많은 이 교수와 신 팀장은 김씨와 통화를 하는 주 협상요원 염 경위에게 실시간으로 사용할 단어와 기피할 단어를 노트에 써 줬다. 협상 속도도 조율했다.
별거 중인 아내의 외도를 의심해 벌어진 이번 안산 인질극은 협상 전문가에게 가장 어려운 사건에 속한다. 이 교수는 “테러리스트나 은행강도처럼 뚜렷한 목적을 갖고 협상할 생각으로 행동하는 인질극보다, 이번 경우처럼 감정적으로 불안한 상태의 인질범들이 저지르는 사건이 훨씬 해결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런 사건일수록 “인질범과 감정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인질범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흥분된 감정을 분출시켜 주면 해결 가능성이 높아진다. 인질범 김씨는 12일 밤 이미 아내의 전 남편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고 아내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13일 오전 의붓딸마저 목을 졸라 살해하는 등 극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하지만 협상팀이 투입된 후 김씨는 아내와의 통화에서 자신의 외로움을 토로하는 한풀이를 하며 상당 부분 감정이 누그러졌다고 한다.
안산 인질극은 결과적으로 협상에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인질 2명이 사망하는 인명 피해를 막지 못했고 특공대가 진입해 인질범을 검거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상황에 따라 협상과 진압을 적절히 구사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서울경찰청 인질협상 전문대응팀의 이상경 경사는 “인질범이 개인적 얘기를 하거나 욕의 사용 빈도가 감소하는 등 긍정적인 신호가 나오면 계속 협상을 진행하지만 돌발행동을 하거나 대화를 거부하는 등의 부정적인 신호를 보이면 진압하는 것이 맞다”며 “김씨처럼 갑자기 휴대폰을 꺼버리고 불러도 대답이 없으면 진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한형직기자 hjha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