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대한 평가가 호의적이지 않다. 기본원칙과 맥락에서 크게 이탈한 탓이다. 비정규직 대책의 원칙이 남용금지와 차별해소임은 주지의 사실임에도 이번 대책은 거꾸로다.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두 배로 늘리고 파견 허용을 확대하는 것은 아무리 비정규직을 불가피한 고용형태로 인정한다 해도 이미 기업의 오남용으로 멍들대로 멍든 한국 노동시장의 맥락에는 배치된다. 600만명이 넘는 비정규직에다 불법파견이나 위장도급을 감안하면 기업이 사용할 수 있는 비정규직 총량을 제한하거나 차별이 확인되면 정규직으로 간주하는 식의 규제 강화가 더 필요한 게 현실이다. 대책에 대한 비판도 의미가 있겠지만, 지금은 문제를 새롭게 제기하는 게 더 중요하다.
무엇보다 원칙 혹은 원론마저 무시하는 노동시장정책의 배후를 질문에 부쳐야 한다. ‘고용률 70’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기껏해야 노동시장을 설명하는 하나의 지표에 불과한 수치가 정책의 대의를 몰아내고 스스로 목적이 됐다. 이 엉뚱한 도착(倒錯)은 지표 자체의 물신화(物神化)로 이어진다. 물신이 된 ‘고용률 70’은 리바이어던의 노동시장 버전이다. 의미와 가치를 모두 삼켜 버린 채, 정책을 수치 맞추기 수단으로 전락시키기 때문이다. 노동이라는 삶의 엄숙한 의미는 고사하고 일자리의 질에 대한 최소한의 고려마저도 허용하지 않는다. 계약직이건 파견직이건, 시간제건 알바건, 목표수치를 채울 수 있다면 어떤 식의 고용도 개의치 않는다. 박근혜 정부의 고용대책을 돌아보니 대부분이 이런 식이다. 시간제 근로가 그러하고 경력단절 여성이나 고령자를 위한 정책도 마찬가지다. 각각의 고유한 필요와 의미야 부정할 수 없지만, 주된 내용이 고용의 비정규화인 데다 고용률 높이기 방편으로만 편리하게 동원되고 있으니 말이다.
노동시장정책의 의미를 상실한 것은 무리한 합리화와 레토릭에서 더욱 명징해진다. 정규직 전환과 같은 선택지를 박탈한, 의도가 의심되는 설문조사를 근거삼아 비정규직 스스로가 기간 연장을 원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를 넘어 왜곡에 가깝다. 고용안정과 차별철폐를 위해 혹한에도 불구하고 철탑에 오르는 노동자들이 우리 시대의 비정규직이다. 설사 비정규직으로라도 좀 더 일하고자 하는 소박한 노동자를 만났다면 그에게서 체념을 읽어내야지, 어찌 이를 비정규‘직’에 대한 선호와 소망으로 바꿔치기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들의 속절없는 체념을 재생산하는 노동시장구조를 혁신하는 것이 정책당국의 소임이지, 땜질식 처방을 내놓고 합리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
동원된 수사(修辭)도 속빈 강정이다. 비정규직 고용안정 도모, 정규직 채용문화 확산, 정규직 전환 기회 제고 등을 방향으로 삼았다지만, 정작 대책은 탈구돼 있다. 이 대책으로 ‘미래세대를 아우르는 새로운 룰’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포부는 놀랍기도 하거니와 지록위마(指鹿爲馬)의 내공(?) 없인 이해조차 힘들다. 설레는 미래도, 공정한 새로운 규칙도 없는 데다 정책방향과 수단의 괴리가 사슴과 말의 차이 못지않기 때문이다.
짚어야 할 또 한 가지는 정책당국의 인식이다. 빼어난 전문성과 소통능력으로 현장을 살피려 애쓰는 노동장관과 관료들의 선의(善意)를 의심하지 않는다. 일자리가 척박한 이 시대, 고용유지도 중요하다는 정부 주장에 동의한다. 정부 말대로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연장하면 정규직이 될 기회가 늘지도 모른다(물론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책의 기본을 망각한 처사나 미미한 정규직 ‘가능성’을 실제 효과로 인식하는 확증편향 따위를 고려하면 정책당국의 무의식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고용률 70에 압도된 채 국민은 물론 자기도 모르게 자신마저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물신이 된 수치에 포획돼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라. 이를 게을리 하면 향후 정책에도 선의는 있을지언정 정의(正義)는 없을 것이다.
신은종 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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