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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은 남이 키우는 걸 보는 게 진리" 주말에도 TV만 뚫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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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은 남이 키우는 걸 보는 게 진리" 주말에도 TV만 뚫어져라…

입력
2015.01.1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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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재 쌍둥이·송일국 삼둥이 등 2030 미혼 여성 모성애 자극

20대 초반 여성들 자칭 랜선이모

"아이들 뒤집기한 날까지 기억하지만 육아에 수반되는 귀찮음은 싫어요"

“5959(오구오구)♥♥사랑이는 내가 랜선으로 낳은 아이야~”

KBS 2TV에서 방영 중인 육아 예능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젊은 여성 애청자들은 스스로를 ‘랜선맘'이라고 부른다. 굳이 해석하면 근거리 통신망(LAN;Local Area Network) 케이블상의 엄마라는 뜻. 또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아기들을 두고는 ‘랜선으로 낳은 아이’라고 부른다. 통신망으로 아이를 낳은 엄마라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이야기일까.

랜선맘은 사실 열광적인 아이돌 팬 문화에서 비롯된 신조어다. 블로그나 SNS에서 활동하며 아이돌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기거나, 아예 감정적으로 동화돼 아이돌 스타의 출세와 성장에 마치 엄마처럼 기뻐하고 보람을 느끼는 팬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랜선맘들은 TV프로그램에 나오는 아이들에 흠뻑 빠진 여성들인 셈이다.

최근 육아 예능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아기들은 랜선맘들의 ‘모성애’를 충족시켜줄 새로운 대상으로 떠올랐다. 특히 개그맨 이휘재의 쌍둥이 아들인 이서준ㆍ서언(2) 형제와 배우 송일국의 삼둥이 송대한ㆍ민국ㆍ만세(3) 형제가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랜선맘 현상에 불을 지폈다.

특히 이들 쌍둥이ㆍ삼둥이 형제들은 20~30대 미혼 여성들의 잠자고 있는 모성애를 깨우는 자극제다. 2030 랜선맘들은 자신의 SNS 프로필 사진에 삼둥이 사진을 올려놓거나, 메신저에서 삼둥이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등 랜선으로 낳은 아이들 사랑에 여념이 없다. 블로그에 아기들의 애교만발 ‘움짤(움직이는 사진)’들을 게시하는 랜선맘들도 부지기수다.

박소희(27ㆍ회사원ㆍ가명)씨는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본방 사수는 물론 삼둥이의 사랑스러운 재롱만 모아놓은 ‘액기스 편집본'까지 챙겨보는 열혈 랜선맘이다. 얼마 전 삼둥이 달력을 구입한 박씨는 자신의 SNS에 달력 구매 인증 사진까지 올렸다. 또래 여자 친구들은 박씨의 게시물에 ‘나도 삼둥이 달력 샀다’, ‘주문해 놓고 배송 기다리는 중이다’, ‘나는 삼둥이 중 대한이를 좋아한다’ 등등의 댓글로 호응했다. 삼둥이 달력에는 막 태어난 삼둥이의 모습부터 최근까지의 발달 과정은 물론 아빠 송일국의 모습까지 담겨, 달력이 아니라 평범한 가정에서 발견할 법한 포토앨범에 가깝다. 박씨는 “회사 책상 위에 달력을 놓고 쓰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내 자식, 내 남편도 아닌데 이렇게 소장하는 게 껄끄럽기도 하다”면서도 “하지만 달력 속에 담긴 삼둥이 사진은 정말 귀엽다. 수익금도 좋은데 쓰인다고 해서 하나 장만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랜선맘 윤명희(26ㆍ은행원)씨는 월요일 출근을 앞둔 일요일 밤 랜선맘들이 인터넷에 올려놓은 편집본 동영상을 보며 힐링을 한다. 방송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실제 엄마처럼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고 윤씨는 설명했다. 그는 “아기들이 정말 귀여워서 ‘내 아이는 저렇게 안 예쁘면 어떡하지’, ‘내 아이도 저렇게 귀여울까’라고 상상하면, 더욱 몰입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직 혼기가 차지 않은 20대 초ㆍ중반 여성들 사이에는 아기들을 랜선조카라 부르는 자칭 ‘랜선이모’들도 있다. 스스로를 랜선이모라고 소개한 박희진(25ㆍ대학생ㆍ가명)씨는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전회를 동영상 파일로 소장하고 있다. 박씨는 “소장하고 두고두고 본다. 파일을 지울까 싶다가도 ‘몇 회에는 이게 귀여웠지, 몇 회에는 저게 귀여웠지’하면서 지우질 못하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특히 서준, 서언 쌍둥이에 대한 애정이 크다. 그는 “어릴 적부터 쌍둥이의 발달 과정을 다 지켜본 느낌이다. 처음 뒤집은 날, 처음 일어선 날들이 일일이 생각 난다”면서 “요즘은 말문이 트이려고 한다”고 뿌듯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박씨는 본인이 결코 랜선맘은 아니라고 말한다. 박씨는 “귀여운 건 귀여운 거지만 육아에 수반되는 귀찮음은 싫다. 이게 바로 랜선이모의 마음”이라며 나름 랜선맘과 차별점을 설명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렇게 TV속 아기들에 죽고 못사는 랜선맘 중 상당수는 정작 실제로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또 육아를 이어나가야 하는 삶에는 물음표를 찍는다는 점이다. 또 다른 랜선이모 윤가희(22ㆍ회사원)씨는 “나 자신한테 투자하면서 살고 싶다. 방송을 보면서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며 “그저 귀여워서 보는 것 뿐이다”라며 말을 잘랐다. 실제로 한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육아 예능을 보고 실제로 출산을 하고 싶냐’라는 질문에 ‘그냥 귀여운 모습만 보고 싶다’, ‘오히려 더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애들은 남이 키우는 걸 보는 게 진리’라는 댓글이 이어졌다.

방송에 비치는 화려한 육아 생활에 랜선맘들은 괴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올 여름 결혼을 앞두고 있는 박소희씨는 “삼둥이가 먹는 것만 봐도 정말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지만 동시에 엥겔지수(가계 지출 중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중)를 계산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고 털어놨다. 박씨는 “아이를 워낙 좋아해서 한 명은 꼭 낳고 싶지만 방송을 보면서 둘째는 자신 없어졌다”고 말했다. 1.187명(2013년 기준)에 불과한 출산율에 쌍둥이ㆍ삼둥이의 육아 자체가 ‘그림의 떡’인 셈이다.

아무리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고는 하지만 TV 예능프로그램 속의 아이들, 더구나 다른 사람의 아이들에 이처럼 열광하는 것, 더구나 열혈시청자 차원을 넘어 실제 엄마인양 감정이입까지 한다는 건 선뜻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도를 넘어서는 랜선맘 현상이 불안정한 일자리, 생계 등으로 출산과 육아를 포기하는 이른바 ‘삼포세대’의 단면이라고 말한다.

양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랜선맘 현상에는 대리만족과 보상심리가 얽혀 있다”며 “내가 출산과 육아가 어려우니 상대방의 생활을 보고 대신 만족하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온라인에서 서로를 발견하는 랜선맘들은 “누군가 나와 똑 같은 입장에 있을 때 내면에 있던 것을 드러내며 위안을 받는 것”이라고 양 교수는 설명했다.

이현주기자 memor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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