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현실 영화보다 유머러스한 판타지가 좋아… 감독·연기 함께 하는 우디 앨런을 닮고 싶어요"
“한국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꿈꾸냐고요? 전 우디 앨런 같은 감독이 되고 싶습니다.”
2013년 저예산 코미디영화 ‘롤러코스터’로 감독 데뷔한 배우 하정우(37)가 14일 두 번째 영화 ‘허삼관’을 극장에 내걸었다. 배우 출신으로 세계적인 거장 감독이 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뒤를 따르려나 싶었지만 그는 감독이면서 연기를 겸하는 우디 앨런을 닮고 싶다고 했다. 이스트우드의 심각한 현실보다 앨런의 유머러스한 판타지가 좋다는 뜻이다.
하정우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허삼관’은 중국 소설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각색한 작품이다. 마을 최고 미녀 허옥란(하지원)과 세 아들을 키우던 허삼관이 첫째 아들 일락의 아버지가 아내의 결혼 전 약혼자였다는 걸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희비극적 요소가 시종일관 혼재하는 원작과 달리 영화는 전반부에 유머를 집중시키고 감동과 눈물로 후반부를 채웠다.
“허삼관이 일락을 아들로 받아들이는 것과 가족을 위해 피를 파는 매혈기라는 2가지 콘셉트를 2시간짜리 영화 한 편으로 만드는 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두 편을 하나로 만드는 것과 같았죠.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코믹함을 잃지 않으려고 유머러스한 장면을 예비로 찍어놓기도 했지만 결국 한 가지 톤으로 가게 됐죠. 상업영화니까 한쪽 방향으로 관객이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이 정답인진 모르겠지만요.”
‘허삼관 매혈기’를 2시간 이내로 소화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허삼관의 젊은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을 다루는데다 1950~60년대 중국 서민의 궁핍한 삶, 국공합작에서 문화혁명으로 이어지는 중국 현대사, 평등이라는 이상을 추구하다 결국 불평등이라는 현실을 깨닫게 되는 인식의 과정 등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원작소설을 읽은 분들이라면 제 영화를 보고 실망하실 거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영화는 원작을 읽지 않은 대다수의 관객을 대상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원작을 조금 바꾸더라도 극적인 설정을 넣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설에 담긴 세세한 묘사가 좋아서 연출을 수락했지만 그게 제 발목을 잡더군요. 2시간 이내로 끊는 게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영화만 생각하기로 했죠.”
연출과 연기를 겸하는 데서 오는 혼선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그는 준비 단계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7가지 종류의 각색 시나리오를 펼쳐 놓고 스태프들의 의견을 들었고, 시나리오를 결정한 뒤엔 윤종빈, 류승완, 김용화, 김병우 등 친한 감독들을 찾아 다니며 조언을 구했다. 전체 분량의 40% 정도를 테스트 삼아 세트장에서 미리 찍어보기도 했다.
위화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옮긴 장이머우 감독의 ‘인생’이 원작의 10% 정도만 녹여낸 작품이란 말을 듣고 힘을 냈다는 하정우는 중국의 현대사가 드러난 부분을 과감하게 쳐내고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장면도 촬영 후 편집 과정에서 들어냈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을 1950, 60년대로 한 건 “1970, 80년대보다 정치적 이슈가 적고 덜 식상해서”였다. 충남 공주를 무대로 한 건 “코믹한 캐릭터를 더 강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 같아서”였지만 문어체 대사가 사투리와 섞이는 걸 피하기 위해 충청도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롤러코스터’를 찍고 나서 “나만 혼자 웃을 수 있는 이기적인 영화로 관객과 소통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하정우는 “많은 사람들의 뜻을 모아 ‘허삼관’을 찍고 나니 세 번째 작품에선 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생겼다”고 했다. 최동훈 감독의 ‘암살’을 촬영 중인 그는 곧이어 박찬욱 감독의 새 영화 ‘아가씨’에 합류해야 해서 당분간 감독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듯하다. “이번 영화는 제 인생에 있어서 좋은 수업이고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배우로서 뒤도 안 보고 앞만 보며 10년을 보냈는데 ‘롤러코스터’를 시작으로 ‘허삼관’까지 큰 전환점이 된 것 같아요. 그 동안 잃어버린 것, 까먹은 것, 잃어버린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이었는지 깨닫게 됐습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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