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고대 올림픽은 여성에게 참가는커녕 관전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현대의 모든 프로스포츠 역시 남성 위주로 발달해 왔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늘어나면서 스포츠계도 변하기 시작했지만 신체적 특성에서 오는 참여의 한계는 늘 존재했다. 그랬기에 그 영역에 도전하는 여성들은 늘 편견과 먼저 싸워야 했다. 하지만 세상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이겨내고 남성성 짙은 종목에서 당당하게 활약 중인 이들도 있다. 그녀들은 중독된 영역에서 고독하지만 지독하게 달려 새로운 길을 쓰려한다. 스포츠계 '독한 녀자'들의 의미 있는 도전기를 5회에 걸쳐 전한다. '강한 여자'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녀자'에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았다. -편집자주-
시리즈 다시보기☞ ①송가연 ②권봄이 ③김예지 ④지소연 ⑤김자인
지난해 11월 9일 전라남도 영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에서 열린 코리아스피드페스티벌(KSF) 벨로스터 터보 마스터즈 최종 라운드 결승전. 포지션 싸움을 위한 치열한 첫 바퀴 승부 중 한 차량이 앞 차와의 충돌을 피하려다 중심을 잃고 가드레일을 세게 들이받았다. 차량은 허공에서 두 바퀴를 돈 뒤 ‘쿵’ 소리와 함께 10여m를 미끄러졌다. 액션 영화에서나 보던 대형 사고였지만, 놀랍게도 카레이서는 담담히 사고 차량을 빠져 나왔다. 헬멧을 벗은 모습이 전광판에 잡히자 관중석은 또 한 번 술렁였다. 사고의 주인공은 낯익은 외모의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바로 XTM ‘더 벙커’와 MBC ‘무한도전’ 등을 통해 대중에 알려진 권봄이(27·서한퍼플모터스포트)였다.
LAP 1. 레이싱을 하지 말라고?
지난 7일 서울 명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권봄이는 "그 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차가 가드레일에 충돌한 후 구르고 미끄러지는 동안 잠시 정신을 잃기도 했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당시 사고는 레이싱 관계자들조차 한국 레이싱 역사상 몇 안 되는 대형사고로 꼽는다. 그런 만큼 부상도 상당히 심각했다. 경추뼈가 크게 손상돼 자칫 하체 마비까지도 우려됐던 상황이었다. 주치의는 '앞으로 카레이싱을 하지 말라'며 선수 생활에 사실상의 사형 선고를 내렸지만 그녀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결국 선수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철심을 박는 수술 대신 엉덩이 뼈를 이식한 후 좌·우 3개씩 총 6개의 나사를 박는 수술을 택했다. 그녀는 "더 고통스럽고 더 위험했지만 이제 막 레이싱 맛을 알았다. 레이싱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녀의 부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1년 8월 태백 서킷에서는 손등 뼈 분쇄골절 부상을 입었다. 장마의 굵은 빗줄기 속에 랩 타임을 줄여보고자 과욕을 부리다 수막 현상을 제어하지 못해 당한 사고였다. 당시 사고 후유증으로 지금도 왼손을 완전히 펴지 못한다. 프로 데뷔 이전에는 카트를 타다 갈비뼈 3개가 부러지기도 했다.
LAP 2. 방황 끝에 다가온 운명
왜 이토록 험난한 레이싱 세계에 끌렸을까. “사실 이렇게까지 험할 줄 모르고 시작했다”며 호탕하게 웃던 그녀는 “레이싱은 방황하던 시절 만난 운명 같은 인연이었다. 한 번 중독되니 지독하게 달려들게 됐다”고 말했다. 레이서 데뷔 전까지 그녀의 삶은 방황의 연속이었다. 20대 초반 아이돌 그룹 연습생 생활을 접은 뒤 메이크업 아티스트, 바리스타, 보험 설계사, 골프장 리셉션 담당 등 수많은 직종을 경험했지만 적성에 맞는 일을 찾지 못했다. 스스로도 “직장인으로서는 0점이었다”고 고백할 정도다. 그러던 중에 만난 카레이스 세계는 그야말로 삶의 스폰지였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던 젊은 날 취미로 만난 경주용 카트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그 당시를 되짚던 그녀의 목소리엔 아직도 떨림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나가는 차 이름을 줄줄 외우고, 공기놀이 대신 문구점 앞 미니카 경주장에서 오빠들과 대결을 하는 등 차에 관한 한 유별난 집착을 보였던 권봄이. 그런 그녀에게 경주용 카트 레이스 적응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장윤범(48) 팀챔피언스 감독이 제안한 오디션에 통과한 그녀는 이후 빠른 적응력을 보이며 슈퍼레이스 정상급 클래스인 배기량 3800cc급 제네시스 쿠페에 출전하게 된다. 대부분의 레이서들이 1600cc 클래스에서 데뷔하는 데 비하면 파격적인 출발이다.
LAP 3. “쟤 저러다 말거야”
남이 걷지 않은 과정을 생략하고 올라서니 시기도, 시비도, 견제도 뒤따랐다. 그 중에서 꼭 이겨내고 싶은 힘든 말이 있었다. “쟤 저러다 말 거야”.
뒤돌아 눈물 흘린 날이 많았지만, 그럴수록 오기가 생겼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그녀의 승부욕은 더 불타올랐다.“변명도 설득도 하기 싫었다. 성적만이 편견을 걷어낼 길이라고 생각했다”며 훈련을 거듭했다. 카레이싱 경기는 다른 종목과 달리 남녀가 함께 승부를 겨룬다는 점이 그녀에게는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같은 출발점에서 동등한 클래스의 차를 몰고 대결하기에 성적만 따라 준다면 편견은 사라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승부욕만 가지고 될 일은 아니다. 체력, 지구력, 담력 면에서 남성을 따라잡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 7~8월 한여름엔 긴팔 긴바지의 레이싱 수트와 헬멧, 엔진과 지면의 열이 더해져 차체 안은 그야말로 불덩이 속의 지옥이다. “헛것이 보일 때도 있고, 남성 드라이버도 쓰러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그녀는“하지만‘여자라서’ 더 힘들단 핑계는 대고 싶지 않았다”며 버티고 버텨냈다.
FINAL LAP. "편견 사라지는 그 날 까지 달린다"
오기는 독기가 됐다. 그리고 이 독기를 동력 삼아 남성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체력 훈련에 투자했다. 이렇게 체력과 노하우를 쌓아 간 그녀는 어느덧 정상을 바라볼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지난해 열린 KSF 시리즈 총 6라운드 예선 경기서 두 차례 1위를 기록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본선에서도 실격 및 불참 경기들을 제외하면 모두 10위권 안에 들었다. 매 경기마다 절반 이상의 남성 드라이버를 앞섰다는 의미다.
이제 누구도 그녀를 업신여기지 않는다. 현재의 팀 동료들은 가장 큰 지원군이 돼 주고 있다. 올해 다시 3800cc 제네시스 쿠페 클래스에 도전하는 그녀는 '끝장 승부'라는 키워드를 내세웠다. 체력이 허락하는 한 여성이 아닌 한 사람의 카레이서로 끝까지 도전하겠다는 뜻. 지난해 얻은 부상에 아직도 고생 중이지만 “시즌 중반에라도 꼭 서킷에 복귀하겠다”며 의지를 다지고 있다.
“현역 생활 중 KSF 시즌 챔피언은 꼭 한 번 이뤄보고 싶다”그녀의 목표 또한 모든 선수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각오의 무게는 다르다. 여성 드라이버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새로 도전하는 후배들이 레이싱에 집중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우승의 힘이 필요하단다. “훗날 여성 레이싱팀도 창단하고 싶다”는 그녀는 “언제까지 달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힘이 닿는 순간까지 서킷을 달리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자신이 달린 그 길이 앞으로 나타날 여성 레이서들에 친절한 이정표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김형준기자 mediaboy@hk.co.kr
▶[영상] 권봄이의 거침없는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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