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패션 노조가 패션업계나 예술계에서 경력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빌미로 저임금이나 무급 인턴을 채용하는 갑(甲)에게 ‘2014년 청년착취대상’을 수여하였다. 수상을 한 당사자의 관계자는 왜곡된 측면이 있다고 강력하게 반박했지만, 도제식 관행이 남아 있는 영역에서 이는 지금껏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 측면이 있다. 그들은 젊은이들을 불러다 놓고 가난과 배고픔이 예술적 능력을 한 차원 끌어올려줄 것이라고 달콤하게 속삭였을지도 모른다.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젊은이가 있으면 아예 대놓고 “우리 때는 안 그랬어”라고 일갈했을지도 모른다. 그 말을 하면서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강도 높은 노동을 요구했을지도 모른다. “너 말고도 이 일 하고 싶어 하는 사람 많아”라는 말로 을(乙)들을 교묘하게 협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노동 현장에서, 열정은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불가능하다. 젊은이들은 반복되는 부당함 속에서 일에 대한 열정을 잃거나 자신의 꿈이 무너지는 경험을 맛보게 될 것이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명분 때문에 말도 안 되는 대우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던 젊은이들은 어느 순간, 그 일을 더 이상 좋아하기 힘들 것이다. 열정으로 시작한 노동이 그 일에 열정을 잃게 만드는 자충수로 작용하는 셈이다. 열정은 착취되는 순간, 발산될 여지가 없어진다. 노동은 정당한 대가가 지불될 때에만 숭고하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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