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소니픽처스 엔터테인먼트 해킹 사건에 대한 대응 조치로 새로운 대북제재 행정명령(13687호)을 발동한 데 이어 이용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해 북한에 대한 제재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대니얼 글레이저 재무부 테러·금융 담당 차관보는 13일 미 하원 외교위원회(위원장 에드 로이스)가 주최한 청문회에 출석해 “북한이 불법행위를 하는 데 따른 비용을 높이고 국제적 의무와 규범을 준수하도록 가용한 수단을 전면적으로 동원해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와 글레이저 차관보의 이 같은 언급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당분간 강력한 제재국면에 돌입할 것을 예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우리는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해왔으며 북한이 불법무기와 도발, 인권탄압 행위를 스스로 포기할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며 “양자와 다자를 아우르는 제재 확대를 통해 북한이 파괴적 정책 결정을 하는 데 따른 비용을 높이고 핵과 탄도미사일에 쓰이는 재원을 줄이며 궁극으로 북한의 선택지를 좁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새로운 대북 제재 행정명령과 관련해 “북한 정부와 당을 직접 제재대상으로 지정해 소니 해킹사건에 대한 대처뿐만 아니라 앞으로 북한의 불법행위를 전면적으로 다뤄나가는 기본 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대표는 이에 따라 재무부는 앞으로 기존 제재대상들에 물질적 지원을 제공하는 북한 정부와 당 소속 개인과 단체들을 제재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국토안보부는 공공 분야와 민간 영역의 사이버 안보를 강화하는 대응조치를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특히 다자 차원의 제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관련국들에 이번 행정명령에 따른 제재의 권한을 설명하고 있다”며 “미국은 북한과 매우 제한적인 경제적 교류를 하는 만큼 대북 제재는 관련국들이 동참할 때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측 6자 회담 수석대표인 김 대표는 이달 안에 일본 도쿄(東京)에서 한·미·일 6자 회담 수석대표 회동을 가진 뒤 중국 베이징(北京)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북한과의 대화 모색과 관련해서는 “우리는 북한이 비핵화 의무를 이행하려는 용의를 보이면 양자 관계를 개선할 수 있으며, 의미 있는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며 “그러나 불행히도 북한은 조건 없는 대화를 주장하면서 우리의 대화 제안을 일축하거나 무시하면서 일련의 도발 행위로 대응해왔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북한이 6자회담 재개에 앞서 취해야 할 조치로 ▦핵·미사일 실험 유예(모라토리엄) ▦영변 5MW(메가와트) 원자로 가동 중단 등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북한이 최근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임시 중단하면 핵실험을 임시로 중단할 수 있다고 제안한 것에 대해 “북한은 어떠한 핵 활동을 해서도 안 된다”면서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할 사안을 일상적인 한미방위훈련과 연계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했다. 북한의 테러지정국 재지정 방안에 대해선 “개인의견은 적절하지 않다”며 언급을 피했다.
그는 남북 관계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70년 이산가족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평양이 진정으로 관심이 있는지를 따져보고 있다”면서 “북한에 뭘 바라느냐를 두고는 워싱턴과 서울 사이에는 빛 샐 틈이 없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박 대통령은 ‘남북 관계의 주요한 진전은 오로지 비핵화와 함께할 때만 가능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면서 “북한이 원칙 있는 박 대통령의 비전을 받아들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북일 관계에 대해서도 “일본인 납북자 귀국을 추진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역시 북일 양자 관계의 진정한 진전은 오로지 비핵화와 함께 할 때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중국의 역할에 대해 “중국은 이미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으나 북한에 필요한 압력을 가할 수 있도록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글레이저 차관보는 청문회에서 “이번 행정명령은 북한 정권에 재정적 압박을 강화하고 북한을 국제 금융시스템으로부터 고립시키는 재무부의 권한을 크게 확장시켰다”며 “이는 우리가 북한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결단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글레이저 차관보는 “재무부는 사상 처음으로 북한 정부와 노동당 관리와 관련 단체들을 제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다”며 “특히 재무부는 제재대상으로 지정된 개인과 단체들을 대신해 활동하거나 물질적 지원을 제공하는 개인과 단체들을 제재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지금 북한 정부는 재정적으로 고립돼 있다”며 “수년간 재무부가 북한의 미국 금융시스템 및 국제 금융시스템 접근을 제한하고 차단하면서 전 세계 금융기관들이 북한과의 거래를 단절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재무부는 광범위하고 강력한 제재 수단을 활용해 북한의 불법행위들을 적발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12일에 이어 이틀 연속으로 사이버 보안 강화대책을 제안했다.
이날 미국 백악관은 사이버공격을 받은 기업이 피해 정보를 정부 기관과 더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악성코드의 판매와 사용에 대한 사법기관의 단속 권한을 강화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사이버보안 입법 제안’을 발표했다. 이 제안에는 피해 기업이 사이버공격 정보를 국토안보부의 국가 사이버안보정보통합센터(NCCIC)에 제공함으로써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정부 기관과 관련 기업들이 대응책을 마련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해킹에 쓰이는 악성코드나 악성코드에 감염된 컴퓨터 집단을 뜻하는 '봇넷'(Botnet)의 매매 행위를 단속하기 위한 정부 사법기관의 단속권한을 강화했다. 법원에 '봇넷'을 인터넷과 단절하는 권한을 부여하자는 내용도 제안에 담겼다. 이 제안에는 기업의 불필요한 개인정보 수집을 제한하자는 내용이나, 미국 내에서 절취된 금융 관련 정보를 해외에 판매하는 행위를 규제하자는 내용도 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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