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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득실 모호한 오일전쟁 역풍 분다

입력
2015.01.1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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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헤이그의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매달 둘째 주 화요일에 일제의 위안부 만행을 규탄하는 화요집회가 1994년부터 21년째 열리고 있다. 본보 기자가 헤이그 현장에서 쓴 8일자 르포를 읽고 일제 야만이 유럽의 이들에게까지 뻗친 배경이 궁금했다.

태평양 전쟁에서 네덜란드 여성 400여명(추정)이 일본군 성 노예가 된 것은 네덜란드 식민지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다 포로가 된 때문이었다. 사실 당시 이 여성들의 운명을 비틀어 놓은 것은 원유였다. 일제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점령하자 미국 루스벨트 정부가 원유공급을 중단했고, 이에 일제는 새 원유공급지로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가 필요해졌다. 이를 위해 먼저 전략적 위협인 미국 태평양 함대 제거에 나선 것이 진주만 기습이었다. 일제의 패망과 중국의 공산화로 이어진 태평양 전쟁이 원유 확보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사는 이처럼 그 배경이 원유인 사건들로 채워져 있다. 가까이 미 부시 정부가 이라크를 테러와의 전쟁 대상에 포함시킨 이유에도 원유 확보가 숨어 있는 정황과 증언이 속속 공개되고 있다. 당시 석유세력들은 세계 에너지 공급위기가 곧 닥칠 것이며, 그러면 세계경제 붕괴는 불가피하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 연장선에서 미개발 원유가 있는 곳, 이라크로 가야 한다는 결론을 9ㆍ11사태 이전에 내린 상태였다. 전쟁 결정을 내리고 주도한 대통령,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이 석유업계 경력자인 것도 새삼스럽다.

불과 6개월 전 100달러 대이던 배럴 당 원유가격이 지금 50달러 밑으로 내려왔다. 하루 100만 배럴의 초과공급 때문에 1년도 안돼 가격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저유가 오일전쟁이다. 원유의 무기화는 1973년 욤키푸르 전쟁으로 불리는 4차 중동전쟁에서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자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미국에 금수조치로 보복하고 나선 게 처음이었다. 유가가 갑자기 4배나 뛰면서 세계경제가 그 희생양이 되었고, 오일머니가 강경 이슬람세력에 유입되면서 이스라엘이 위협받았다. 이번 원유의 무기화는 미국과 사우디가 연합해 고비용 구조인 러시아 베네수엘라 이란 등을 겨냥하는 양상이다. 원유 한 품목이 수출의 95%를 차지하는 베네수엘라는 국가부도를 걱정하고 있고, 원유가 수출 비중의 75%인 러시아도 사정이 비슷하다.

하지만 원유를 둘러싼 매커니즘이 복잡해 저유가에 따른 득실을 따지는 일이 쉽지는 않다. 이번 오일전쟁의 첫 패자가 쿠바인 것도 계산하기 어려운 파장을 보여준다. 쿠바 경제는 베네수엘라의 유고 차베스가 집권한 1999년 이후 대량의 저가 원유공급 덕에 유지되던 의존경제였다. 그러나 원유가격이 배럴당 120달러일 때도 휘청대던 베네수엘라가 지금 어떠할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어진 쿠바는 미국이 던져준 구명보트를 마다하지 않았다. 반세기 만에 중남미의 지정학을 바꾼 것은 제재와 압박이 아닌 저유가였다. 러시아는 지난 연말 하루 사이 루블화가 13% 떨어지고, 주식은 11% 하락해 상장기업 가치의 4분의 1이 사라질 만큼 홍역을 겪고 있다. 호전적인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런 어려움이나 국민불만을 가만 놔둘 리 없을 것이다. 그가 문제를 해외에서 풀려 할 경우 저유가가 국제불안을 야기하고, 그 반작용으로 유가가 오르는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굴에 불을 피워 토끼 잡으려다 곰을 깨울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오일전쟁이 세계 각국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역시 가늠하기 쉽지 않다. 한반도에선 고유가로 군용기 훈련까지 제한 받던 북한이 도발적 훈련을 강화할 여지가 크고, 중동에서는 고유가 혜택을 보지 못한 중산층이 저유가 피해를 떠안을 경우 오일민주화의 역풍이 불 수 있다. 1986년에도 사우디가 오일 마개를 열어 4개월 만에 원유가격을 70% 가량 떨어뜨린 적이 있다. 결국 원유 관련 산업이 거의 붕괴하면서 원유생산이 감소했고, 사우디는 원유시장에서 영향력을 되찾았다. 그러나 이번 오일전쟁에는 수요-공급 방정식만으로 풀기 어려운 역학관계들이 곳곳에 작용하고 있다. 저유가로 경제득실은 모호한데 국제정세는 불투명해지고 있다.

이태규 기획취재부장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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