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들여다보던 개인수첩에 ‘문건 파동 배후는 K, Y. 내가 꼭 밝힌다. 두고 봐라, 곧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 한 인터넷언론 카메라에 포착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있던 날이다. 김 대표는 논란이 일자 “누가 그러길래 그냥 적었는데, 그게 카메라에 찍힌 것”이라며 “이니셜 인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여당 대표의 메모에 문건 파동 배후가 나왔다면 무게가 다르고, 그냥 넘어갈 일도 아니다. 당장 새정치민주연합은 “검찰 수사를 심지어 여당 대표조차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난 메모”라며 “특검을 통해 배후를 가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바탕 소동이 빚어지자 메모에 적힌 또 다른 이름의 한 인사가 뒤늦게 사실을 밝힌 모양이다. 그가 김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김무성(K), 유승민(Y)이 십상시 문건 파문의 배후라고 하는 소문에 대해 아시냐고 말 한적이 있다”며 “황당한 헛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준 것”이라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누군가 ‘정윤회 문건’을 이용해 또 다른 음해, 이간질에 이용해 먹고 있다는 얘기다. 정치판이 말을 잘 지어낸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풍문과 의혹의 확대재생산 구조가 이 정도라니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이런 어처구니없는 풍문도 결국 검찰 수사의 빈틈을 파고든 것이라는 데 이르면 예사로 볼 일도, 그냥 해프닝으로 치부할 일도 아니다.
검찰은 수사결과 발표에서 문건 내용에 있는 2013년 십상시 송년모임과 정윤회씨의 김기춘 비서실장 관련 언급에 대해 박관천 전 경정의 ‘창작’으로 결론 내렸다. ‘근거 없는 풍설이 공직자에 의해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가공됐다’고 한데서 그렇다. 하지만 박 전 경정은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에게 들었다고 했지만, 박 전 청장은 김 실장 사퇴설에 대한 찌라시 내용 등을 말했을 뿐 문건에 있는 정씨 발언을 박 전 경정에게 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또 김 실장과 홍경식 전 민정수석의 지시로 김 실장 사퇴설 유포 경위를 조사하게 됐다는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말과 달리 김 실장이나 홍 전 수석은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문건 작성 경위와 ‘창작’과정이 분명하지 않다는 의미다. 허위라면 범행 동기가 있어야 할 터인데 그것도 없다. 문건 파장 ‘배후’ 풍문이 김 대표를 겨냥하고, 대통령이 허위라고 해도 세간의 의혹을 불식시키지 못하는 까닭이 검찰 수사의 허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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