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명의 푸른빛이 어둠을 서서히 걷어냈다. 하늘이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절정의 순간, 찬란한 태양이 고개를 내밀었다. 유려한 물길 위로 꼼 속 같은 물안개 피어올랐다. 물새들이 날개 힘차게 퍼덕이더니 비로소 새 아침이 시작됐다. 오랫동안 기다린 무구한 겨울 아침! 천연한 하루의 시작이 그립다면 경기도 여주 남한강변으로 간다. 가서, 강변을 거닐고 고요한 사찰의 정취를 만끽한 후 싱그러운 소나무 숲길에서 뒹굴면 몸도 마음도 겨울처럼 맑고 깨끗해진다.

● 신륵사에서 맞는 아침
신륵사는 보기 드물게 강변에 있다. 절 앞으로 여강이 흐른다. 남한강의 여주 구간이 여강이다. 유서 깊은 절도 정갈하지만 앞마당에서 보는 남한강이 미끈하고 아름답다. 이 풍경 보러 애써 절을 찾는 이들 제법 된다. 겨울이면 풍경이 더 천연해진다.
새해 벽두에는 해뜨기 전에 간다. 일주문 지나 걸으며 어둑한 새벽녘의 고즈넉함을 즐긴다. 매서운 강바람에도 가슴은 어찌나 상쾌한지. 일주문에서부터 강물이 보이고 경내까지 이어진 길은 물길과 나란히 간다.
여명 무렵에는 강기슭 바위 언덕에 있는 강월헌에 선다. 남한강 물길 굽어보는 정자다. 뒤에 있는 다층전탑 앞에 자리를 잡아도 좋다. 그러면 하늘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곧 찬란한 태양이 불쑥 고개를 든다. 햇살이 한기를 물리치니 고요한 강물에 물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철새들도 수면을 지치며 힘차게 날아오른다. 마음이 덩달아 설렌다. 어떤 날에는 강변 나목들에 상고대가 핀다. 그러면 고상하기가 더 하다. 꿈 속 같은 하루의 시작을 가슴에 각인한다. 일상으로 돌아가 사는 것 퍽퍽하다 싶을 때 게워내 곱씹으면 큰 위로 된다.

이름난 해맞이 장소 못지않은 운치가 있으니, 멀리 못갈 형편이라면 남한강변 신륵사 기억한다. 서두르면 서울 도심에서 한 시간이면 간다. 산중(山中)에 있지 않으니 부담도 없다. 아이 손잡고, 연인의 허리 살포시 보듬고 산책하듯 다녀온다.
신륵사도 운치가 있다. 내력도 깊다. 신라의 고승 원효가 세웠다고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왕의 능인 영릉(英陵)을 관리하는 능침사찰이었다. 특히 고려말 고승인 보제존자(나옹선사)와 연이 깊다. 그는 이 절에서 입적했다. 다비식은 강월헌이 있는 바위 언덕에서 열렸다. 후에 그를 따르던 문도들이 이 자리에 정자 세우고 그의 당호를 따서 이름 붙였다. 원래 정자는 홍수에 떠내려가고, 현재의 것은 1973년에 새로 지었다. 극락보전 내부 대들보 상부의 ‘천추만세’라는 현판도 그가 직접 썼다. 신기하게도 이 현판은 보는 각도에 따라 글자가 달라 보인다. 조사당 뒤로 난, 소나무 울창한 계단을 오르면 보제존자 석종부도가 있다. 원통형 몸체에 팔각형 지붕이 있는 흔한 모양이 아니라 종 모양으로 생긴 부도탑이다. 볼수록 중후하다. 이 앞에 있는 석등도 눈여겨본다. 조각이 참 섬세하고 화려하다. 조사당은 신륵사엣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지금은 보수 중이다. 안에는 보제존자와 고려말 고승 지공선사, 무학대사의 영정을 모셨다.
일주문 인근 강기슭에는 조포나루가 있었다. 이포나루, 마포나루, 광나루와 함께 조선시대 한강의 4대 나루터로 꼽힌 곳이다. 충주에서 한양까지 사람과 물산을 실어 나르던 배, 강원도를 오가던 소금배들이 이곳에 모였다. 쌀과 도자기 같은 여주의 특산물이 여기서 한양으로, 외지로 쏟아져 나갔다. 강변 거닐면 그날의 흥성거림이 되살아나 절로 활기가 돈다.

● 세종대왕과 명성황후를 만나다
신륵사에서 세종대왕릉이 멀지 않다. 가는 길에 명성황후 생가도 들른다. 아이와 함께 구경하기 좋은 곳들이다. 걷기에 적당한 소나무 숲도 있다.
명성황후 생가는 단아하다. 원래 그의 6대 조부인 민유중의 묘소 관리를 위해 지은 묘막이다. 민유중은 인현왕후(숙종의 계비)의 아버지다. 명성황후는 1851년 여기서 태어나 8년을 살았다. 다음에는 생가 옆에 있는 감고당에서 왕비로 책봉되던 16세까지 지냈다. 인현왕후의 친정집이 감고당이다. 생가에서는 안채가 당시의 건물이다. 마루에 그의 초상이 있고 그 앞에 하얀 국화가 놓였다. 마주하면 통한의 그날이 떠올라 한겨울인데 가슴이 뜨거워진다.

영릉(英陵)은 조선 4대 왕인 세종과 소헌왕후의 합장릉이다. 1km 남짓한 거리에 조선 17대 왕인 효종과 인선왕후의 능인 영릉(寧陵)도 있다. 각각을 잇는 산책로가 두 개 있다. 하나는 능침 들머리를 연결하는 산책로인데 5월 16일부터 10월 31일까지만 개방한다. 다른 하나는 두 곳의 매표소(주차장)를 연결하는 산책로인데 연중 개방한다. 두 곳을 자동차로 오가지 말고, 두 번째 산책로를 걸어본다. 야트막한 언덕 하나를 넘는 흙길인데, 길 옆으로 소나무들이 빼곡하게 도열한 풍경이 참 예쁘다. 사방이 고요하니 아이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기에 그만, 연인과 사랑 속삭이기에 제격이다. 차가운 겨울 날씨도 문제 되지 않을 만큼 운치 있다. 편도 약 500m, 왕복 1km. 딱 40분만 투자한다.

왕릉도 돌아본다. 도시의 번잡한 일상에서 완벽하게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위가 고요하다. 세종이 묻힌 영릉(英陵) 입구에는 세종대왕이 만들었던 해시계, 물시계, 측우기 등의 모형이 전시돼 있다. 1만원권 지폐에 그려져 있는 혼천의(일종의 천체 위치 측정기)도 있다. 능침 에두른 소나무들이 화려하다. 바람 부는 대로 휘어진 듯, 모양새가 날렵하고 아름답다. 효종이 묻힌 영릉(寧陵)은 하나의 언덕에 효종의 릉과 인선왕후의 릉이 위아래로 위치한다. 모두 능침 앞까지 다가갈 수 있다.

● 고즈넉한 폐사지를 걷다
마지막으로 북내면 혜목산 기슭 고달사지 찾아간다. 폐사지다. 고달사는 신라 때 지어진 절로 전한다. 고려 때 국가가 관장하는 3대 선원으로 왕실의 보호를 받으며 번성했다. 조선 초기까지 번창하다 이후 기록에서 사라진다.
너른 들판에 부서진 탑비와 불상 사라진 석불대좌가 덩그렇다. 탑비는 귀부(비석 받침돌)와 이수(비석의 지붕)가 장대하고, 조각이 화려하다. 석불대좌는 균형과 비례, 조각 솜씨 등을 따져 봤을 때 수작이라고 안내판은 설명한다. 눈이 놀랄 볼거리는 없다. 그러나 걸어보면 알게 된다. 시간의 묵직함 차곡하게 내려앉은 들판이 이렇게 마음 편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게다가 사위가 어찌나 고요한지 겨울 폐사지는 속세와 단절된 은밀한 공간이다. 고단한 삶의 넋두리를 마구 쏟아 부어도 좋다. 그런 다음 큰 숨 들이켜면 일상의 생채기가 시나브로 아문다. 살면서 이런 비밀의 장소 하나쯤은 간직해야 한다. 풍경 헛헛해도 이 안에 발들인 기분은 그리 먹먹하지 않다.
여주=글ㆍ사진 김성환기자 spam001@hksp.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