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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국제시장’에 대한 딸과의 대화

입력
2015.01.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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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제시장’을 봤다. 흥행에 성공한 박스 오피스 1위이기도 했지만 영화가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면서 꼭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마침 미국에서 잠깐 나온 딸과 함께 보게 되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뭉클하면서 이산가족 상봉 등 몇 장면에서는 눈물을 참기 힘들었고 옆에 앉은 딸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했다. 하지만 벅찬 감흥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딸과 나눈 대화는 영화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과 이념 논쟁에 대한 얘기로 흘러갔다. 아마 미국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갓 졸업해 미국 회사에 다니고 있는 딸에게 뭔가 우리 정치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얘기를 해줘야 한다는 필자의 ‘꼰대스러움’이 발동했던 것 같다. 이하는 당시 딸과의 대화를 재구성해본 것이다.

딸:“이 영화가 왜 정치적 논란을 야기하지?”

필자:“‘국제시장’에 대한 정치적 논란은 최근 몇몇 진보 성향의 평론가들이 비평을 제기하면서 시작됐어. 한 비평가는 ‘이 고생을 우리 후손이 아니고 우리가 해서 다행이다’라는 영화 속 메시지를 두고 어른 세대의 공동의 반성이 결여돼 있어 ‘토가 나온다’고 혹독한 비판을 하기도 했어. 부모 세대와 박정희 대통령의 은공을 강조하는 우익 편향 영화라거나 ‘역사를 다루면서 역사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비평도 매한가지지. 한마디로 독재정권하 산업화 시대의 ‘공’만 강조하고 ‘과’는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의식을 결여하고 있다는 거야.”

딸:“그런 비평 또한 편향된 것 아니야? 부모 세대와 그 시대의 공에 대해 인정해줄 것은 인정해줘야 되는 것 아닌가?”

필자:“네 말이 맞아. 나도 특히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정치사를 가르칠 때 우리 영화를 참고로 많이 보라고 하는데 실제 산업화 세대의 ‘공’과 희생을 다루는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어. 가령 해방 후 정치적 상황을 다룬 ‘태백산맥’, 한국전쟁 관련 ‘태극기 휘날리며’, 산업화 시대 암울한 노동 현실을 보여주는 ‘전태일’,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화려한 휴가’, 그리고 ‘박하사탕’과 같은 영화들은 있는데 ‘국제시장’ 같은 영화는 처음인 것 같아. 이런 영화가 나왔다는 게 반갑고 바로 다음 수업부터 학생들에게 보여줄까 해. 그리고 사실 ‘국제시장’을 보면 단순히 보수 편향적인 영화라고 할 수 없는 장면들도 있어. 부산 출신 주인공 덕수가 월남전 당시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호남 출신 해병대원 가수 남진이 손을 내밀어 구해주고, 차별당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과거 파독 외국인 노동자였던 덕수가 편들어주고, 영화 마지막 부분에 덕수의 손녀가 ‘굳세어라 금순아’를 흥얼거리는 장면들은 특정 이념과 상관없이 지역ㆍ민족ㆍ세대를 아우르는 소통과 화합 및 관용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딸:“영화라는 게 모든 면을 다 보여줄 수도 없고 또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필자:“그 말도 맞아. 영화는 영화일 뿐.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그렇지만 진보 쪽에서 강조하는 역사의식은 중요해.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께서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퍼지니까 경례를 하더라’, ‘그렇게 해야 나라라는 소중한 공동체가 건전하게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나갈 수 있다’라고 하시면서 애국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어. 하지만 작년에 우리가 같이 봤던 ‘변호인’을 기억해봐. 고문 전문 차 경감이 송 변호사를 구타하다가 애국가가 나오니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면서 ‘나 같은 사람들이 목숨 걸고 빨갱이 잡아주니까 당신 같은 놈들이 뜨신 밥 처먹고 발 뻗고 주무시는 거야’,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봐 우리 같은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가. 당신이 할 수 있는 애국이 뭔가!’라고 말하잖아. 같은 애국의 이름으로 공동체의 발전도 이룰 수 있지만 인권을 탄압하고 독재를 미화할 수 있는 거야. 그리고 우리가 같이 정주행하면서 봤던 드라마 ‘미생’에서 비록 애국가는 부르지 않지만 상사맨으로서 애국을 할 수도 있잖아. 여하튼 난 네가 역사의식과 균형 있는 시각을 갖길 원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랑 영화 같이 보고 이렇게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참 좋았다.”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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