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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테러서 자생적 테러로… 아울라키 추종자 '경계 1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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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테러서 자생적 테러로… 아울라키 추종자 '경계 1순위'

입력
2015.01.1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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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이후 폭력적 성전 주장, 숨진 후에도 막대한 영향력

서구 무슬림 차별 등에 불만, 예멘·이라크·시리아行 늘어

프랑스 파리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의 배후인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가 2013년 3월 발간한 영문 홍보잡지 '인스파이어' 10호에서 이 주간지의 편집장이자 만화가인 스테판 샤르보니에(노란 원 안 인물)가 현상수배 대상으로 지목돼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프랑스 파리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의 배후인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가 2013년 3월 발간한 영문 홍보잡지 '인스파이어' 10호에서 이 주간지의 편집장이자 만화가인 스테판 샤르보니에(노란 원 안 인물)가 현상수배 대상으로 지목돼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직접 훈련시킨 뒤 대규모 인명을 살상한 ‘9ㆍ11’과 다른 방식의 테러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경기침체, 차별 등으로 사회에 불만 가득한 서구 무슬림 청년들이 극단주의 지도자의 출중한 동영상 등 설교에 현혹돼 거의 제 발로 훈련캠프를 찾아온 뒤 테러리스트로 변신해 자국을 포함, 전세계에서 암약하고 있다.

9ㆍ11 테러범에 비해 이들은 더 다양한 점조직이고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 수년 전 델타 항공기 테러 미수와 보스턴 마라톤 테러에 이어 이번 파리 연쇄 테러는 이런 새로운 테러 공식을 충분히 의심케 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범인 쿠아치 형제가 “예멘 알카에다의 근거지에서 군사훈련 받았다”고 예멘 소식통을 인용해 11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쿠아치 형제는 2011년 7월 오만을 거쳐 예멘에 밀입국해 사흘간 아라비아반도 알카에다(AQAP)의 근거지인 마리브주 사막에서 무기 다루는 법과 테러 전술을 배웠다. 이들은 거기서 AQAP 지도자 중 한 명인 미국 출신의 안와르 알아울라키도 만났다.

경찰을 사살하고 인질극을 벌인 아메디 쿨리발리(32)가 테러 전 이슬람국가(IS)에 충성을 맹세하는 동영상도 인터넷에 등장했다. ‘이슬람의 적에 대한 쿨리발리의 복수’라는 제목의 이 동영상에는 그가 IS 깃발을 배경으로 아랍어로 충성을 서약하는 모습이 담겼다. 그는 자신의 집으로 보이는 실내에서 AK-47 자동소총을 벽에 세워놓고 테러의 이유로 “당신들(프랑스)이 IS를 공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알카에다ㆍIS는 온라인 등을 이용해 경기 침체로 실망한 서구의 젊은 무슬림을 이라크와 시리아로 유인해 전투원으로 양성하고 있다. 쿠아치 형제와 쿨리발리처럼 극단주의 세력에 동조한 서구 무슬림들은 선동적 주장을 담은 이들의 인터넷 동영상에 공감해 훈련 캠프가 차려진 예멘 등지로 가서 테러에 가담하게 된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 과정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아울라키이고, 그가 만든 알카에다의 온라인 영어잡지 ‘인스파이어’가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사격과 폭탄제조법 등을 알려주는 이 잡지의 2013년판 표지 사진에는 샤를리 에브도 편집장 스테판 샤르보니에가 지명수배 인물로 등장했고, 쿠아치 형제는 이번 테러에서 샤르보니에를 가장 먼저 찾아내 살해했다. 2013년 4월 보스톤 국제마라톤대회 테러범인 체첸인 형제도 아울라키에 큰 영향을 받았다. 폭탄제조법은 인스파이어에서 배웠다.

달변가인데다가 영어에 능통한 아울라키는 온라인을 활용해 전세계에서 지지자들을 끌어 모아 한때 오사마 빈라덴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졌다고 평가받기도 했다. 1971년 미국 뉴멕시코에서 태어난 아울라키는 7세 때 예멘으로 갔다 19세에 콜로라도 주립대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귀국했다. 설교에 재능이 있었던 그는 덴버와 샌디에이고, 심지어 미 의회와 국방부에서도 오찬 연사로 명성을 날리는 성공적인 이맘(이슬람 성직자)였다.

그의 인생항로가 바뀐 것은 9ㆍ11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테러범 3명이 아울라키의 사원에서 예배를 했다는 이유로 미연방수사국(FBI)의 조사를 받았다. 아울라키는 2002년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연사로 활동하다 2004년 예멘으로 간 뒤 서방국가들에 대한 폭력적인 성전주의를 본격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아울라키는 2011년 9월 예멘에서 실시한 미군의 드론 공습작전으로 숨졌다. 그런데도 여전히 테러리스트들의 입에서 아울라키가 오르내리는 이유가 뭘까. 유튜브를 잠시만 뒤져보면 미국에 공격을 촉구하는 아울라키의 선동 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서구 사회에 반감을 품은 무슬림들은 아울라키가 없는데도 그가 남긴 선전에 현혹돼 테러에 나서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테러리스트들이 이제 영감과 지시를 받는 조직을 당당히 밝히고 범행을 저지르는 형태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평가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에서 생존한 칼럼니스트 패트릭 펠룩스(맨 오른쪽)와 만평가 레날드 루지어(가운데) 등이 11일 희생자를 기리고 에브도를 지지하는 파리 거리 행진 시위에 참여해 눈물을 보이고 있다. 파리=로이터 연합뉴스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에서 생존한 칼럼니스트 패트릭 펠룩스(맨 오른쪽)와 만평가 레날드 루지어(가운데) 등이 11일 희생자를 기리고 에브도를 지지하는 파리 거리 행진 시위에 참여해 눈물을 보이고 있다. 파리=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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