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뮌헨 페어라흐 지역에는 글로벌 기업 지멘스가 운영하는 세계 최대 규모 연구개발(R&D)센터인 ‘지멘스 테크놀러지(Siemens Corporate Technology in Munich)’가 있다. 1977년 세워진 이 곳은 세라믹 등 신소재부터 소프트웨어 솔루션, 정보통신기술(ICT)까지 지멘스의 미래를 책임질 첨단 기술 개발이 한창인 ‘지멘스의 두뇌’ 역할을 한다. 센터 한 켠에는 허름한 창고처럼 생긴 박물관이 눈에 띈다.
박물관 운영책임자인 헤르만 무팡씨는 지난달 이곳을 찾은 기자에게 “1847년 설립된 지멘스의 168년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곳”이라며 “지멘스가 만든 1만5,000점 이상의 제품을 모아놓았다”고 설명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전동차 한 칸 이었다. 1885년 만든 이 전동차는 무려 시속 300㎞의 속도를 냈다고 한다. 바로 곁에는 흑백 영화에서 볼 수 있던 럭셔리 카도 보였다. 무팡씨는 “지금부터 110년 전에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전기차”라며 “베를린에서 고급호텔을 오가는 택시로 쓰였다”고 말했다. ‘빅토리아(Victory)’라는 이름이 붙은 이 전기차는 큰 상자 안에 들어있는 배터리를 교체할 때 차체를 들어야 하지만 시속 30㎞ 속도로 80㎞거리를 달릴 만큼 성능은 좋았다. 이 밖에도 1866년 개발돼 기계식 설비가 주도하는 세상에서 전기 세상으로 탈바꿈하게 한 ‘개량형 발전기(Dynamo)’와 세계 첫 신호등(Ampel) 시스템 등 지멘스의 발명품들이 즐비했다.
잠시 후 무팡씨는 창고의 다른 쪽을 가리키면서 “이 전시관의 가장 큰 보물은 지금부터”라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 곳에는 청소기 다리미 등 전자 제품들이 놓여 있었는데, 무팡씨는 네모난 물건을 들고 “애플 아이폰보다 먼저 나왔지만 실패한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이라고 소개했다. 지멘스는 노키아와 손잡고 2006년 노키아지멘스를 세운 후, 통신네트워크 분야의 사업을 진행하며 스마트폰도 개발했지만 마케팅 실패로 빛을 보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부분 기업 전시관이 잘한 것을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실패의 역사까지 담고 있어 구성원들에게 훌륭한 아이디어 창고 역할을 하고 있다. 무팡씨는 “지멘스의 모든 역사를 이렇듯 보관할 수 있게 된 것은 고객들의 참여 덕분”이라며 “이 곳 제품 상당수는 아무 조건 없이 고객들이 기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도 독일 안팎에서 자신이 쓰던 지멘스 제품을 전시관에 기증할 수 있겠느냐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회사 사람들도 무엇에 쓰는지 모르는 지멘스 물건들도 여럿 있다”고 덧붙였다. 며칠 전 들어왔다는 옷 갈아입을 때 공기를 따뜻하게 해주는 ‘파라봉’ 역시 그 중 하나라고 했다.
뮌헨=글ㆍ사진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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