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진ㆍ김민석의 눈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지난 9일 목동아이스링크에서 끝난 제69회 종합선수권대회는 여자 싱글 우승자 박소연(18ㆍ신목고)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당연한 결과다. 약 3년 앞으로 다가온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이후 처음으로 시상대에 설 것으로 기대 받는 그다. 더욱이 이날 시상자가 김연아였다. 은퇴한 ‘피겨 여왕’이 은반 위로 깜짝 컴백해 박소연에게 손수 금메달을 걸어줬다. 언론은 ‘차세대 피겨 여왕’이라는 표현으로 방긋 웃는 박소연을 조명했다.
그 사이, 박소연의 동갑내기 라이벌 김해진(18ㆍ과천고)은 울고 있었다. 프리스케이팅에서 한 차례 실수도 없는 ‘클린’ 연기를 펼치고 나서다. 점수를 확인하는 키스앤크라이 존에서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다독이는 신혜숙 코치의 손길도 소용 없었다. 한 동안 펑펑 운 김해진은 쇼트프로그램에서의 부진을 떨치고 최종 순위 5위에 자리하며 그나마 자존심을 회복했다.
김해진은 대표적인 ‘김연아 키즈’다. 박소연과 번갈아 국제대회에 출전하며 한국 여자 피겨의 미래라 불렸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한 때 박소연에 앞서기도 했지만 시니어 무대에 뛰어들 때 즈음 ‘1인자’ 자리를 뺏겼다.
여자 선수들은 10대 중후반에 한 번쯤은 성장통을 겪는다. 갑자기 키가 크거나, 몸무게가 불면서 잘 되던 점프가 말을 듣지 않는다든가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 등이다. 김해진의 슬럼프도 이와 무관치 않다. 자신감이 뚝 떨어지고 실수가 반복되면서 프로그램 자체를 망치는 안타까운 일들이 계속 되고 있다. 그리고 이날 흘린 눈물은 모처럼 만족할 만한 연기를 한 데에 따른 감격과 기쁨, 그 간의 마음고생이 섞여있었을 테다.
남자 피겨의 맏형 김민석(22ㆍ고려대)도 울었다. 한국 남자 피겨를 외롭게 이끌어 온 주인공이다. 김민석은 이번이 마지막 종합선수권이었다. 다음달 말 열리는 동계체전이 은퇴 무대다. 그는 대회를 마친 뒤 “후배들을 보면서 내 한계가 보였다. 똑같이 하는 데도 나는 성장 속도가 더디더라”며 “기쁨과 아쉬움 등 복잡한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김민석은 이준형(19ㆍ수리고), 김진서(19ㆍ갑천고)가 등장하기 전 꾸준히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나섰다. 음악 감상이 취미라며, 쉬는 시간에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게임을 즐긴다는 평범한 10대 소년이기도 했다. 하지만 늘 외로웠다. 선의의 경쟁을 펼칠 라이벌이 없었고 국제대회에서는 김연아에 밀려 주목 받지 못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후배들은 김민석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 “굉장히 친한 형이 은퇴해 아쉬운 마음이 크다.” 오랫동안 김민석과 함께 훈련해 온 이준형의 말이다.
이처럼 김해진의 눈물에도, 김민석의 눈물에도 값진 뜻이 담겨 있었다. 김해진은 극심한 슬럼프에서 벗어나 다시 박소연과 제대로 경쟁할 터닝 포인트를 찾았다. 박소연에게도 좋은 일이다. 김민석은 지도자로 새 인생을 준비하며 후배들의 선전을 기원하는 진짜 ‘맏형’이 됐다. 후배들이 김민석의 몫까지 해줘야 한다. 김연아가 떠난 뒤 과거로 회귀해 변방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됐던 한국 피겨계. 이 둘이 흘린 은반 위의 눈물과 함께 의미 있는 성장을 하고 있다. 함태수기자 hts7@hks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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