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지속에 부동자금 몰려 1년 새 150조 늘어 1762조 달해
원금보장 안 되고 위험투자 성향에도 美·日과 달리 규제 완화 행보
우리나라의 그림자금융(키워드 설명 참조) 규모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은행의 금융시장 내 비중 축소, 저금리 기조 장기화를 배경으로 비은행 금융기관들이 다양한 투자기법을 동원한 수익추구형 상품들을 속속 내놓으면서 기존 예금 및 대출 상품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자금융의 확대는 저금리 시대에 투자처를 제공하고 은행이 도맡아온 자금중개 역할을 다변화하는 등 금융시장에 활력이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미국, 중국 등 그림자금융에 대한 경계감이 강한 국가들과 달리 국내에선 부실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유사시 원금 보장을 받을 수 없고 느슨한 규제 속에 위험투자 성향도 강화되고 있어 주의가 요망된다. 특히 머니마켓펀드(MMF), 종합자산관리계좌(CMA), 금전신탁 등 은행 예금과 유사한 형태의 상품을 통해 개인들도 폭넓게 그림자금융에 투자하는 상황이라 자칫 피해자가 양산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1일 한국일보가 한국은행 자금순환표를 분석한 결과 국내 그림자금융이 조달한 자금 규모(잔액 기준)는 지난해 9월 말 현재 1,762조2,762억원으로 1년 전(1,610조346억원)보다 9.5% 늘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추정치(1,500조원)를 훌쩍 넘는 규모다. 은행권 조달자금 대비 비율도 2013년 9월말 79.6%에서 1년새 82.4%로 늘었다.
글로벌 금융감독기구인 금융안정위원회(FSB)의 통계에 따르면 2009~2013년 5년 동안 한국의 그림자금융 규모가 두 배 증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림자금융 규제를 강화해 규모를 줄였던 미국, 영국, 일본 등과는 다른 흐름이다.
은행 금리가 1%대로 내려앉은 저금리 상황은 그림자금융의 온상이 되고 있다. MMF는 지난해 말 잔액이 전년 말보다 16조원(24%) 늘어난 82조3,600억원, CMA는 4조5,500억원(11%) 증가한 46조3,300억원으로 각각 집계됐다. 2013년 말 247조6,500억원 수준이던 금전신탁 잔액은 지난해 10월 말 299조3,500억원으로 증가, 현재 3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그림자금융 중 위험도가 높다고 평가받는 자산유동화증권(ABS) 역시 주택금융공사가 발행량을 대폭 줄인 주택저당증권(MBS)을 제외하면 지난해 1~3분기 발행량(18조8,851억원)이 전년 동기보다 10% 이상 늘었다. 시중 부동자금이 그림자금융으로 몰려들고 있는 셈이다.
그림자금융은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사태를 불러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했고, 중국 경제 최대의 잠재적 위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지만 국내에서 그림자금융이 단기간에 심각한 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그림자금융의 급격한 증가세가 좋은 신호는 아니지만, 미국에 비해 위험자산 투자 비중이 낮고 규제도 강해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국도 자산운용사의 영업용순자본비율(NCR) 규제를 풀고 사모펀드 및 헤지펀드에 대한 대폭적인 규제 완화 방침을 밝히는 등 유화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안전투자 상품으로 각광받던 MMF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대규모 인출사태를 맞으며 위기를 심화시켰듯이 안심은 금물이라는 지적이 많다. 1조7,000억원 규모의 투자 피해를 낳은 동양 사태가 특정금전신탁 상품을 매개로 이뤄지는 등 국내에서도 이미 그림자금융발(發) 충격이 가시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그림자금융을 매개로 금융기관 간 자금거래가 늘면서 특정 기관의 위험이 금융권 전반으로 퍼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범호 한은 조기경보팀 차장은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금융기관의 위험추구 유인이 커지는 등 그림자금융 성장에 따른 잠재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며 “관련 기관이 많고 거래방식도 나날이 복잡해지고 있어 규제 사각지대가 발생할 위험도 크다”고 지적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그림자금융이란=미국 채권펀드 핌코의 폴 맥컬리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2007년 처음 사용한 용어로 ‘전통적인 은행시스템 바깥에서 자금중개 기능을 수행하는 금융기관이나 상품’을 뜻한다. 한국은행 기준에 따르면 은행 등 예금취급기관, 보험, 연기금, 금융공기관을 제외한 금융기관이 이에 속한다. 은행에 비해 건전성 규제가 적어 위험자산 투자가 가능한 반면 투자자는 원금 보호를 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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