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관여 안 했어도 면책 불가
주식회사의 사외이사가 회사 경영에 실질적인 관여를 하지 않았다 해도 분식회계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아 온 사외이사 제도와 관련해 사법부가 엄격한 면책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코스닥 상장사 코어비트 투자자들이 회사 측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윤모(55) 전 사외이사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1일 밝혔다.
2009년 박모(46) 코어비트 대표는 비상장사 55만주를 17억6,000만원에 사들이고도 재무제표에는 110억원을 지급했다고 기재하는 등 15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 횡령 사실 은폐가 목적이었던 분식회계는 법적 분쟁을 통해 뒤늦게 드러났고 코어비트는 2010년 2월 코스닥 시장에서 결국 퇴출됐다. 이에 코어비트 주식을 샀다가 상장폐지로 손실을 본 투자자 69명은 외부 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과 박씨 등 전ㆍ현직 이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은 “피고들은 총 49억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사외이사인 윤씨에 대해서도 “이모 이사와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 등으로 볼 때 분식회계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보인다”며 배상 책임을 물었다. 다만 삼일회계법인에 대해선 외부 감사인으로서 주의 의무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며 책임을 묻지 않았다.
하지만 2심에서 윤씨에 대한 부분은 뒤집어졌다. 실제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았고 사외이사로서 실질적 활동도 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자본시장법 162조 1항에 따르면 이사가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다 해도 분식회계 사실을 알 수 없었다고 판단되면 배상책임을 면할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주식회사의 이사는 선량한 관리자로서 주의를 기울여 대표이사와 다른 이사들의 업무집행을 전반적으로 감시ㆍ감독할 지위에 있고, 사외이사라고 해서 달리 볼 수 없다”며 “원심 판결은 법리오해”라고 밝혔다. 이어 “윤씨가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이사회에 참석하지도 않은 것은 사외이사의 직무를 전혀 수행하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사정일 뿐”이라며 “사외이사로서 상당한 주의를 다했다고 볼 수 없고, 만약 그랬더라도 분식회계 사실을 알 수 없었다고 볼 사정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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