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환경과 다른 호주 안내서 사용 "자체 시스템 없는 건 무책임" 지적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가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는데도 정부가 가축질병 주요 매개체인 야생동물의 질병대응전략을 자체적으로 마련하지 못하고, 외국 것을 그대로 가져다 쓰기로 해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8일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은 “야생동물 질병관리 방안 등을 담은 호주 정부의 ‘야생동물 대응전략’ 안내서를 전국 수의과대학, 각 시ㆍ도 야생동물구조센터 등 관련 기관에 배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질병 종류ㆍ질병관리 원칙ㆍ개체군 조사 등 총 11장으로 구성된 안내서에는 야생동물 질병의 확산 범위와 유병률 조사 방법, 야생동물 포획 기술 등의 내용이 담겼다.
환경과학원 관계자는 “야생동물 질병 대응에 필요한 지침이 국내에 없는 현실을 감안해 야생동물 질병에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국가 중 하나인 호주의 전략을 번역해 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1년부터 현재까지 소와 돼지, 닭, 오리의 살처분과 농가피해보상에 3조원 이상 지출되는 등 막대한 가축질병 피해가 계속 됨에도 환경부가 별도의 야생동물 질병대응전략조차 마련해놓지 않은 것은 책임 방기라는 지적이다. 2011년 충남 아산의 야생 기러기 사체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되는 등 야생동물은 가축질병의 주요 매개체다.
우리와 호주의 축산 환경이 달라 대응전략의 실효성도 크지 않을 거란 지적도 나온다. 신남식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호주는 구제역 청정지역인데다 국토가 매우 넓고 사는 생물종도 한반도와 다르다”며 “호주의 야생동물 질병 관리방안을 국내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수의학과 교수도 “야생동물 관리는 환경부 소관이지만 그간 보호 등 생태 쪽에 역점을 두느라 질병관리에 소홀했던 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환경과학원 소속 야생동물 질병 담당 인력은 9명이다.
올해 연말까지 국내 상황에 맞는 야생동물 질병관리 전략이 마련되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환경부는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따라 올해 말까지 ‘야생동물 질병관리 기본계획’을 만들기로 했으나 환경과학원 관계자는 “수립시기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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