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藏書)는 사전적으로 ‘책을 간직하여 둠, 또는 그 간직한 책’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단 그 책을 내 것으로 가지고 싶다는 욕망에서 집에 들이는 사람을 장서가라 부를 수 있겠다. 얼마 전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을 읽었다. 저자는 일본의 서평가이고 책 3만권 이상을 집에 지니고 사는 사람이다. 그는 책 더미에 눌려 사는 삶의 불편함과 괴로움을 구구절절이 묘사한다. 그의 집은 이미 오래 전에 책들을 보관하는 것이 주 목적인 공간으로 변했고, 사람은 그 틈에 얹혀살거나 아니면 책을 돌보기 위해 존재하는 집사처럼 느껴진다. 장서가의 별난 일상에 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로 공포스럽기도 했던 이유는 그의 애환이 내게 생판 남의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리라.
나는 별로 용기 있는 인간은 아니지만, 이미 읽은 책을 남에게 주는 측면에서라면 동료 작가들 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용자라고 자부해왔다. 특별히 아끼는 책이나 저자가 직접 서명하여 선물한 책이 아니라면 (되돌려 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전제하고서) 빌려달라는 이에게 기꺼이 뽑아 건네주었다. 또 일 년에 두어 번 씩 서재를 정리하여 책을 솎아내고는 필요하다는 곳에 여러 상자씩 보내고는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별 감흥 없이 읽은 책이라도 집밖으로 쉬 내보내지 않게 되었다. 분명히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책인데 급한 순간에 서재를 아무리 뒤져도 찾지 못하는 낭패를 몇 번 겪고 난 뒤부터다. 책 좀 모은 이라면 누구나 아는 얘기지만 서재의 책은 무한 증식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고 서재의 빈자리는 무한 감소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테트리스 게임을 해 본 사람들도 무슨 말인지 금세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례적인 남 주기 작업을 두어 번 건너뛰었더니 나의 서재도 이윽고 더 이상의 수납이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에게서 ‘슬램덩크 프리미엄 완전소장판’ 한 질을 선물 받게 되었다. 예상 못한 선물에 뛸 듯 기뻐한 것도 잠시, 총 스물 네 권에 달하는 이 책들을 어디에 꽂아야 할지 난감했다. 책장 한 칸에 나란히 꽂아야만 할 텐데 집안의 모든 책장을 다 돌아봐도 한 칸 통째로 비우기는커녕 한 두 권 새로 꽂을만한 여유조차 없었다. 책등이 보이지 않는 진열 방식, 한 칸에 이중으로 진열하는 방식이 위험신호라는 오카자키 다케시의 경고가 사실이라면 내 서재의 진열 방식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선 것이다.
주변에 책과 관련된 일을 업으로 삼거나 책을 이고 지고 사는 이들이 많다보니 장서와 관련한 여러 일화들이 있다. 한 친구는 몇 년 동안 모아온 계간문예지를 정리하기로 마음 먹고는, 눈물을 머금고 아파트 현관 앞에 내놓았단다. 1호부터 차근차근 쌓아 노끈으로 고이 묶어서 말이다. 부디 문학을 사랑하는 다른 입주민이 가져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다음날 나가보니 책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뿌듯한 마음이었던 친구는 그러나 곧 문제의 책들을 재활용 쓰레기함에서 발견하고 말았다. 집 나간 강아지라도 찾은 듯 기겁하여 품에 감싸 안고 돌아오는 길, 아무 데나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는 행위를 두 번 다시 좌시하지 않겠다는 관리사무소의 경고문을 읽고서 얼굴이 달아올랐단다.
앤 패디먼의 저서 ‘서재 결혼시키기’에 나오는 부부처럼 책을 사랑하는 두 남녀가 결혼하면서 책 살림도 합쳤는데, 나중에 부부 싸움할 때 남편이 화를 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왜 당신이 좋아하는 책들은 잘 보이는 데다 꽂아놓고 자기가 좋아하는 책들은 후미진 구석에 처박아 뒀느냐며 분개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책은 더 이상 책이라는 물질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에 대한 상징 같기도 하다. 장서의 괴로움에서 소개하는, 책을 쌓아놓고 살다 진짜로 집이 무너져버린 이들의 이야기 역시 일종의 우화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신년 일월, ‘수집한 물건은 언젠가 언어가 되고 문맥이 된다’는 다케시의 전언을 가슴 한쪽에 간직하고서, 그래도 버릴 건 빨리 버려야겠다. 막연한 불안감이라는 이름의 욕망을 제일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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