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이 어제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과 관련해 소집된 국회 운영위원회 출석을 거부하고 사의를 표명했다. 운영위 전체회의에 김 수석을 출석시키기로 한 여야 합의에 따라 김기춘 청와대비서실장이 이날 김 수석에게 출석을 지시했는데도 응하지 않고 사의를 표명했다고 한다. 전례가 거의 없는 항명으로 중대사태가 아닐 수 없다. 청와대의 기강이 이렇게까지 무너졌는지 아연할 따름이다.
김 수석은 문건 유출 사건 이후 청와대에 들어와 잘 모르는 자신에게 국회출석을 요구하는 것은 정치공세이며, 거기에 굴복하는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출석을 거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과거에 민정수석의 국회출석 사례가 없지 않은데 납득하기 어려운 핑계다. 그는 비선실세 국정개입 파문의 도화선이 됐던 ‘정윤회 문건’ 유출자를 회유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야당 의원들이 그의 출석을 강력히 요구해온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책임 있는 공직자라면 국회의 출석요구에 응해서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김 수석은 직속 상관인 김 비서실장의 거듭된 지시에도 “차라리 사퇴하겠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공직자의 본분을 망각한 무책임한 처사다.
운영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있던 김 비서실장은 김 수석의 국회 출석거부에 대해 “강력한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의원들에게 밝혔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도 예상 못한 돌발상황이라며 “여야 합의와 비서실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데 대해 인사권자에게 해임을 건의하는 등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청와대비서실의 기강이 무너졌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극명하게 드러났다. 김 비서실장이 새해 청와대 비서실 시무식에서 충(忠)의 의미를 들어가며 기강확립을 거듭 강조했지만 전혀 먹히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 수석의 국회 출석 거부는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를 무시한 행위라는 점에서 국회와 청와대의 관계를 악화시킬 소지가 크다. 그렇지 않아도 청와대가 국회를 경시한다는 불만이 여야 할 것 없이 팽배해 있던 상황이어서 박근혜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만들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는 국회와 청와대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도 되어야 한다.
전면적인 인사쇄신의 목소리도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정윤회 문건 소동이 일부 인사들의 자작극으로 드러났다는 검찰 수사 발표에 따라 별다른 인적 쇄신 없이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의 현 진용을 끌고 갈 방침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청와대 내부 통제조차 어렵다는 게 분명하게 드러났는데 지금의 진용을 유지한다는 것은 무리다. 박 대통령은 12일로 예정된 신년 기자회견에서 전면적인 국정쇄신 방안과 함께 인사쇄신 구상도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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