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에 하는 일이 있다. 다름 아닌 저금통 배 가르기. 엄밀히 말하면, 배를 가른다는 말은 초등학교 때까지만 유효했다. 다양한 모양과 재질의 저금통을 발견한 뒤로 나는 투박한 돼지저금통을 더 이상 사지 않았다. 돈을 넣는 구멍만 있고 꺼내는 구멍은 없는 플라스틱 돼지저금통은 용돈이 떨어질 때마다 밉상이었다. 배를 가르자니 지금껏 모은 게 아까워서 발만 동동 굴렀던 것이다. 해가 바뀌고 돼지저금통의 배를 가르면 인내심을 칭찬하기라도 하듯 은빛 물결이 일었다. 그 동전을 가지고 은행에 다녀오는 길에 새로운 돼지저금통을 사는 게 일종의 패턴이었다. 며칠 전, 문구점에 갔다가 이십여 년 전에나 쓰던 그 돼지저금통을 보았다. 반가운 마음에 몇 개를 덥석 집어 계산대로 달려갔다. “학생, 올해 부자 되려나 보네?” 주인아주머니가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주변에 선물 좀 하려고요.” “얘가 빨갛잖아. 근데 동전을 넣을 때 더 빨개진다?”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배를 잡고 웃었다. “아주 새빨개져서 더 이상 빨개질 수 없을 때까지 열심히 저금할게요.” 저금통을 잘 닦아 책장에 두고 아까 받은 거스름돈을 넣었다. 쟁그랑하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돼지저금통에 돈을 넣는 구멍만 있고 꺼내는 구멍이 없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동전을 넣을 때 사연을 함께 담으니, 그 사연을 함부로 꺼내서 써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올 한 해, 저금통 안에 담길 갖가지 사연들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배가 부르다.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