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 사회는 ‘세 모녀 자살 사건’으로 시작했다. 그러더니 올해는 ‘세 모녀 살해 사건’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 두 사건은 어떤 시사점을 줄까? 우리사회에 만연한 불안과 좌절이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세 모녀 가족은 끊임없는 생계 불안에 시달렸다. 큰 딸의 만성질환과 어머니의 고용불안은 이 가족이 빈곤의 나락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만성불안은 이성적 판단능력을 저하시키고 사람을 좌절하게 한다. 긴급복지지원제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세 모녀는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혹시 긴급복지지원제도를 알았다 하더라도 ‘일시적 도움이 앞으로 살 길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생각하고 희망을 접었을 것이다.
남들 보기에 번듯한 환경에서 일어난 세 모녀 살해사건은 가장의 실직과 주식투자 실패가 가져온 갑작스런 불안과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보인다. 40대가 넘어서면 직장인 누구나 실직 불안에 시달리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취업활동인구 중 자영업자 수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에서 기형적으로 높은 주요인 중 하나가 만성적 고용 불안에 따른 조기 퇴직이다. 세 모녀 살해사건의 가장은 어린 자녀들에게는 실직 사실을 숨긴 채 주식투자로 제2의 인생을 시도하다가 결국 은행부채만 쌓이는 현실에서 가족을 죽이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전형적인 중산층 가족이 극심한 경제적 불안과 이에 따른 고도의 심리적 스트레스 문제를 가져도 중산층 가족을 위한 긴급복지지원제도는 한국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한국사회에는 아예 국민기초생활 수급자가 되지 않는 한 만성적 불안과 좌절, 고도의 스트레스를 개인과 가족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현실만 존재한다. 송파 세 모녀처럼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였든, 서초구 세 모녀 가족처럼 급작스런 불안과 좌절에 직면한 중산층이든 이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세 모녀의 사회복지학’이다. 기초생활수급자 외 다수 대중은 각자 알아서 살라는 파편적 부스러기 복지제도의 맨얼굴이다.
‘세 모녀 사회복지학’이 한국사회에서 사라질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긴급복지지원제도의 의미와 내용이 변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긴급복지지원을 필요로 하는 주 이유는 지나치게 높은 의료비 부담과 이에 따른 소득 저하이다.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수준이 낮은 현실에서 의료산업 민영화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지난 수년간 추진한 결과이다. 공공의료체계는 제자리 혹은 뒷걸음치고 있다. 반면 고가의 치료의학 중심 민간 영리의료전달체계가 확대되고 있다. 고용 유연성을 높이는 정책도 매우 ‘뚝심 있게’ 추진한다. 그러나 고용 불안정에 따른 생계 불안을 해결해 줄 사회보장제도는 외면한다. ‘고용 유연성 높이기와 취업ㆍ생계 지원 연계’라는 선진복지국가의 노동시장 활성화정책 중 마음에 드는 ‘고용 유연성 높이기’만 따와서 외국 사례라고 왜곡 선전한다. 그 결과 우리나라 긴급복지지원제도는 차상위 계층의 과다한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고 긴급한 생계비를 현금으로 지원하는 내용에 치우쳐 있다. 게다가 대다수 중산층에게 긴급복지지원제도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선진복지국가에서 긴급복지지원제도는 대체로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고 현금 지원이 아닌 대인서비스 중심이다. 차상위를 포함한 저소득계층은 이미 보장성 높은 의료보장제도와 기초생활보장제도로써 만성적 생계불안에 시달리지 않기 때문이다. 중산층 역시 기존 공공부조제도와 의료보장제도를 통해 일시적 생계불안 경우에 사회적 안전망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갑작스러운 실직을 했을 경우 본인 명의로 집이 있어도 필요한 생계비와 재취업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게다가 자녀가 대학을 다녀도 교육비 부담을 우리처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실직이나 부채 등 문제가 갑작스럽게 생겼을 때 제공하는 긴급복지지원은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심리상담, 부채상담, 재취업훈련 등 대인 사회서비스가 주 내용을 이룬다.
이제 공공의료전달체계 확대와 활성화 정책에 기초한 고용복지서비스 연계 강화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그래서 일부 저소득층 대상 일시적 현금 제공 위주 긴급복지지원제도를 대다수 중산층 대상 사회서비스로 바꾸는 복지환경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세 모녀 사건’을 우리사회가 진정 잊게 될 것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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