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는 이색 강의가 시작됐다. ‘와카(和歌)와 하이쿠(俳句) 속의 한국어’ 강의다. 강사는 시미즈 기요시 박사. 도쿄 외국어대를 나온 뒤 도쿄대 대학원에서 공부하다 나이지리아로 유학, 그곳에서 학위를 받은 학자다. 나이지리아 이바단 대학,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 오스트리아 빈 대학, 일본 구마모토 대학, 그리고 한국의 여러 대학에서 연구하고 가르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비교언어학자인 그는 당초 아프리카어 연구자였다. 나이지리아의 여러 언어를 비교언어학 방법으로 분석하는 일을 통해 나이지리아 조어(祖語)의 문법체계를 세우고, 이미 사어(死語)가 됐다고 알려진 여러 언어를 재발견, 이를 통해 아프리카 여러 종족의 기원과 이동에 관한 가설을 세우고 증명하는 일에 몰두했다. 이어 유럽에서는 영어와 독일어, 프랑스어 문헌을 뒤지며 아프리카 2000여 언어에 대한 연구를 집대성, 이를 책으로 내기도 했다.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일본의 대학에서 아시아권의 유학생들과 한국어, 중국어, 대만어, 몽고어, 베트남어, 버마어, 터키어 등을 조사하다 ‘일본어는 그 뿌리가 한국어에 있다’는 가설을 세우면서부터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대학 교수직을 버리고 한국에 온 그는 한국인 제자와 더불어 일본어의 뿌리가 한국에 있을 뿐 아니라 일본 민족의 기원 또한 한국에 있다는 것을 밝혀낸다.
그러니까 강의는, 가장 일본적인 시가(詩歌)로 알려진 와카와 하이쿠를 읽으며 그 속에서 한국어에서 유래한 어근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강의를 기획하며 생각하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자신의 연구를 위해 어렵사리 구한 교수직을 팽개쳐가며 아프리카, 유럽, 일본, 한국 등을 전전해온 학자로서의 자세였다. 문제는 강의를 들을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였다. 오후에 강의를 시작해야 하는데 당일 아침까지 강의를 듣겠다고 한 사람이 단 한 명뿐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개강을 결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단 한 사람이 오더라도 강의를 했으면 좋겠다고 한 내 제안을 노학자가 흔쾌히 수락한 덕이다. 이미 제도권의 여러 대학들이 수강생 수를 기준으로 강의의 개폐를 결정하는 터에 대안 인문학 공동체조차 수강생 수를 핑계로 폐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강의는 의외의 성황을 이루었다. 정식 수강생은 4~5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공동체의 학자들이 여럿 찾아온 것이다. 여기에다 일본의 대학에서 가르치다 방학을 맞아 한국에 온 시미즈 박사의 제자 박명미 교수, 박 교수의 남편인 이시이 야스히토 교수까지 참여해 토론을 벌이면서 강의장은 아연 활기가 넘쳤다.
새해를 맞으며 대학 밖 인문학 공동체엔 수많은 강좌와 세미나가 다투어 개설됐다. 우리 공동체에서 1월에 새로 시작하는 강좌나 세미나만 30여개, 현재 진행 중인 것까지 합치면 60~70개에 이른다. 새해를 맞아 공부를 결심한 사람이 늘면서 수강생도 많아졌다. 하지만 모든 강좌가 그런 건 아니다. 참여자가 2~5명뿐인 초미니 강좌도 속출한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헤겔의 ‘정신현상학’,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나’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 강독 등을 1년이나 지속하고, 프랜시스 베이컨의 신기관,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 레비나스의 ‘시간과 타자’, 왕양명의 ‘전습록’처럼 보통 사람은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책을 공부하니 그것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강의하는 학자가 허락하기만 하면 폐강은 하지 않는 것이 우리 공동체의 원칙이다. 인문학이 죽어간다는 말도 대학이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 시장에 완전히 편입돼 주식회사보다 더한 돈벌이 논리로 운영되면서 생겨난 것 아닌가. ‘일반언어학강의’란 명저를 낳은 소쉬르의 저 유명한 강의도 극소수의 학생을 상대로 이루어졌고, 다석 유영모 선생의 강의는 1~2명을 앞에 두고 진행되기도 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이 원칙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안 인문학 공동체의 강의 역시 참여자 수에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는, 대학보다 더 차가운 시장에 노출돼 있는 탓이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가치 있는 모든 것은 어렵다고 했던가.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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