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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선물

입력
2015.01.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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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많은 선물을 받았다. 첫 선물. 나의 이름. ‘꽃별’은 나의 본명이다. 출장 중이셨던 아빠가 꿈에 사막에 꽃이 가득 피고, 하늘에 별이 가득 뜬 걸 보고 일어나 전화를 했더니 내가 태어났다고 했단다. 그래서 꽃별이 되었다. 어릴 때 놀림도 많이 받았고, 너무 특이한 이름이라 나쁜 일로 뉴스에 나면 안 된다는 생각도 했었다. 부담스럽고 유치하다는 생각을 한적도 있다. 하지만 해금하면서 살기에 좋은 이름이다. 아마 할머니가 되면 더 우스울지도 모르지만 지금 나의 삶에는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선물을 받고 있다.

두 번째 선물. 나의 동생이다. 몸집이 작고, 수줍고, 착했던 내 동생. 이사를 많이 다녀서 늘 반 애들에게 치였다. 그래서 내가 데리고 다녔다. 내가 상급반이 되고 수업이 늘어났을 때도 꼭 나를 기다려서 함께 집에 갔다. 귤이 한 알 생겨도 혼자 먹지 않고, 내가 오길 기다렸다가 나눠먹었다. 그러던 꼬맹이가 이제는 나를 지켜주기도 한다. 나를 대신해서 누군가와 싸워주기도 하고, 내가 필요하다고 한 건 어떻게든 구해 준다. 내가 뭔가를 요구했을 때, 안된다라고 말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착한 아이다.

이번에는 가장 특별했던 선물에 대한 이야기다. 안동에 살 때 우리 반에는 과수원 집 딸도 있었고, 아주 가난한 아이들도 있었다. 부자나 가난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꾀죄죄한 애들과 얼굴이 발그레한 애들이 있었을 뿐이다. 그 해 내 생일, 선물을 사러 엄마랑 시장을 갔다. 운동화를 사기로 했다. 그런데 가는 길에 우리 반에 운동화를 안 가져와서 매일 혼나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야말로 꾀죄죄하기 이를 데 없는 아이. 나한테는 그저 선생님 말을 잘 안 듣는 애였는데, 그 애는 운동화 살 돈이 없었던 거다. 그걸 알고는 엄마가 말했다.

“그 애에게 운동화를 선물할 기회를 너에게 선물할게.”

“…?”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 울며 겨자 먹기로 내 운동화 대신 그 아이의 운동화를 샀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걸 그냥 주면 반 아이들이 좋아하네 어쩌네 하면서 놀려댈 것이 뻔하지 않은가? 그래서 제일 일찍 등교해서 그 아이 책상에 놔 두고 모른 척 했다. 근데 그 녀석이 그걸 제 것이 아니라며 선생님께 가져다 드린 것이다. 선생님은 누구 운동화인지 손을 들게 하고. 아이고. 이야기가 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전말이 밝혀지고, 아무도 나나 그 아이를 놀리지 않았다. 마음 한 구석이 포근했다. 덕분에 내 운동화는 작은 구멍이 날 때까지 신었지만.

해금을 꼽지 않을 수 없다. 해금은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다. 가끔 미워하기도 하고, 떨어져 있고 싶기도 하지만 나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어준 존재는 역시 나의 해금이다. 전공하게 되기 전 내가 느낀 해금은 연약하고, 조금은 신경질적인 악기였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소리가 낑낑거리며 내 귀를 파고 들었다. 앓는 소리 같기도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했던 그 소리. 그래서 잡아 본 해금은 연약하지만 강인하고, 나의 심장의 떨림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섬세한 악기였다. 해금은 잘 운다. 20년 넘게 내 곁에서 나 대신 울어주기도 하고, 내 울음을 들어주기도 했다. 해금이 없었다면 나의 인생은 어땠을까. 잘 그려지지 않는다. “나에게 와주어 고맙다”라고 가끔 해금을 붙들고 이야기 한다.

재작년에 결혼을 했다. 나의 20년 지기 친구이자 첫사랑과. 작곡을 하는 신랑과 다음 음반을 준비하고 있고, 수없이 많은 주제들로 이야기 한다. 서로 음악을 들려주면서 조언을 구하고, 힘을 얻는다. 어릴 적부터 친구라 서로 감추는 것이 없어 아이처럼 같이 놀고, 내가 무언가에 흥분하면 가만히 듣고 있다가 현자처럼 정답을 내어 주기도 한다. 거창하지 않은 꿈을 함께 꾸고, 착하게 살자는 이야기를 한다.

누군가에게 보듬어지고, 누군가를 보듬고 살아가는 것이 좋다. 살 맛이 난다는 건 누군가가 곁에 있기 때문이다. 나의 선물들이여. 고맙다.

꽃별 해금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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