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남북 당국의 잇단 대화 의지 표명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가 한껏 고조됐으나 현실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새해 벽두부터 소니 픽처스 해킹과 관련한 미국발 대북 제재 행정명령에 이어 대북전단 문제가 불거져 대화의 동력을 급격히 상실시키고 있는 탓이다. 탈북자단체들이 주도하는 대북전단 살포는 그 동안 남북대화의 주요 장애요인이었다. 지난해 11월 초로 가닥이 잡혔던 제2차 남북고위급 접촉이 무산된 것도 바로 이 문제였다. 5일에도 한 탈북자단체가 기습적으로 대북전단을 날려 보냈다. 북한은 즉각 전단살포가 우리정부 묵인조장 아래 이뤄졌다며 파국인지 대화인지 입장을 명백히 하라고 윽박질렀다. 온갖 수사를 동원한 대화의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남북은 대북전단 문제 하나조차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정부지법이 그제 “국민의 생명과 신체가 급박한 위협에 놓이는 경우 대북전단 살포를 제지할 수 있다”고 판결한 것은 의미가 크다.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대북전단 살포의 적법성을 인정하면서도 경찰관직무집행법 등에 따라 전단 살포를 제지할 수 있는 상황과 범위를 밝힌 게 판결의 취지다. 여야 정치권도 법원의 이 같은 판결을 환영하면서 정부에 적극적인 대처를 촉구했다.
그러나 통일부는 기존 입장에서 크게 달라진 게 없다며 여전히 미온적이다. 이런 자세라면 탈북자단체들이 전단 살포를 강행하면 막을 수 없다. 탈북자단체들은 북한의 격렬한 반발을 산 영화 ‘인터뷰’도 USB에 담아 북한에 날려보내겠다고 한다. 그 경우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뻔하다. 통일부는 전단 살포를 막을 법적 근거가 없다고 하지만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방법은 있다고 본다. 통일부가 탈북자단체들을 설득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도 의심스럽다. 탈북자단체들도 남북관계야 어찌되든, 생존권을 위협받는 접경지역 주민들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하든 무조건 전단을 날려보내겠다는 독선과 과도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6일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현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북한이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진정성과 실천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북측에 조속히 대화협력의 장으로 나오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대북전단 문제 하나 관리하지 못하면서 북측에만 진정성을 요구하는 것은 공허하다. 먼저 북한이 달라지면 그에 맞춰 당근을 주겠다는 소극적인 자세로는 북한을 변화시킬 수 없다. 이명박 정부 이래 명백해진 사실이다. 정부가 정말 남북 대화와 관계개선을 원한다면 보다 현실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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