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개혁은 늘 정치권의 화두였다. 정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3김 시대에는 한 사람이 공천을 좌우했고, 이후에는 계파가 그것을 대신했다. 과거에는 권력자나 계파에 대한 충성이 공천의 잣대였던 것이다. 이렇게 공천돼 당선된 의원들의 마음에 국민이 있을 리 없었다.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공천 방식의 변화였다. 민주적으로 후보를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당원뿐만 아니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경선’을 전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여기에는 ‘상향식 공천=정치 발전’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다. 그러나 개방형 경선은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첫째, 정당 발전에 기여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정당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정부에 안정성과 책임성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정당은 권력을 장악하면 정부를 구성하고 통제하면서 정당 이념에 부합하는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진다. 이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 정당의 규율과 응집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람직한 정당의 모습이다. 그러나 개방형 경선은 무게 중심을 정당에서 후보 개인으로 이동시킨다. 일반 유권자의 참여가 저조한 상황에서 동원력은 경선 결과를 좌우한다. 따라서 표 동원에 도움이 되는 지역 인사나 사조직이 주요 행위자로 부상한다. 대중 매체를 이용한 이미지 정치도 힘을 얻는다. 그 결과 정당은 약화되고 정부의 안정성과 책임성은 위기를 맞게 된다.
둘째,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한 사회의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기준 중 하나는 대의 기구인 의회가 사회의 ‘대표성’을 띠고 구성되는가 여부다. 예를 들어 한 사회의 여성과 남성 비율이 1 대 1이라면 남녀 의원 비율도 그와 같아야 한다. 연령이나 소득 계층 구성 비율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대의 기관이 사회 구성원의 의사를 잘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선은 이런 대표성을 높여주지 않는다. 여성, 젊은 세대, 저소득층 출신 정치신인들에게 매우 불리한 제도다. 그들에게는 경선을 치룰 자금이나 조직도 없다. ‘현직프리미엄’은 이런 정치적 약자의 불리함을 더 악화시킨다. 현직 후보는 조직과 인지도 등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개방형 경선을 채택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현역 의원 대부분이 승리한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물론 상향식 경선이 과거 권위주의적 방식보다 진일보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예측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먼저 선거인단 구성에서 일반 국민이나 여론조사 비율을 가급적 낮출 필요가 있다. 당원들이 후보 선정 권한을 갖지 못한다면 정당 활동에 대한 동기와 충성심은 약화될 것이다. 특히 여론조사 방식은 재고해야 한다. 정치권은 이 방법이 당원 수가 적은 현실을 고려한, 그리고 본선 경쟁력이 높은 후보를 공천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이유로 선호하고 있다. 그러나 길게 보면 정당 발전에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여론조사로 정당 후보를 결정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둘째, 현직프리미엄을 상쇄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자기당 소속 현직 후보의 임기 중 성적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공천 심사에 반영해야 한다. 영국 등 다수 국가에서 이런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셋째, 전략공천을 잘 활용해야 한다. 계파 정치의 수단으로 사용하면 독이 될 수 있지만, 때론 약이 될 수도 있다. 사회적 소수집단의 정치권 진입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의회의 대표성을 높일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많은 민주주의 국가 정당도 특정 집단을 배려하기 위해 할당제나 지명제를 두고 있다.
마지막으로 공천 과정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용해야 한다. 당원과 유권자들이 공천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면 그 정당의 미래는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정당들은 제도상 공천관리위원회에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이 기구는 후보 심사, 공천 방식 결정, 그리고 전략 공천 여부 등 중요한 결정을 한다. 여기에 소수 권력자의 입김이나 계파 간 흥정이 끼어들 여지를 차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원회를 공정하게 구성하고 그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장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공천 개혁이 정당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의 마음가짐이다.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 신뢰를 바탕으로 정당 기반을 확장하는 것, 공정한 과정을 통해 걸러진 후보를 유권자 앞에 내놓는 것, 그 과정에서 정치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 이런 것들에 대한 강한 의지와 실천이 제도 개편 못지않게 중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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