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을 봤다. 새해 들면서 이제 만 50살을 넘겼으니 영화 속 주인공인 윤덕수보다는 20년도 더 차이 나지만, 공감할 수 있는 장면도 적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30여 년 전 아버지와 함께 혹시나 할아버지의 생사를 알 수 있을까 싶어 여의도광장의 이산가족찾기 현장을 찾고, KBS방송 PD가 직접 집에 와 인터뷰한 기억도 떠올랐다. 덕수가 손자들의 재롱을 뒤로 하고 쪽방으로 건너가 아버지 사진을 보며 “약속 잘 지켰죠? 막순이도 찾았고, 이만하면 잘 살았죠? 근데 저 정말 힘들었거든요”라고 울먹일 때는 콧날이 시큰해졌다. 영화 말미에 부인에게 “가게 팔자. 이젠 못 오시겠지? 너무 나이 드셔서…”라는 말이나 미국으로 입양돼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는 막순이를 TV로 상봉하는 장면도 눈물 없이는 보기 힘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봤다면 그저 눈시울 붉히고 가슴 먹먹해진 채 나왔을 영화다.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와 역시 돌아가셨을 할아버지를 한번 정도 더 생각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보기 전에 하도 들은 말들이 많아 눈 똑바로 뜨고 봤다. 그래서 감정이입이 잘 안됐는지 모르지만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무덤덤하게 보다 극장을 나왔다. 아버지를 통해 덕수의 삶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본 뒤에도 국제시장에 대한 논란은 가시지 않았다. 애국을 강요한다는 둥, 공치사 한다는 둥, 꼰대 영화라는 둥 젊은층과 진보라는 쪽에서 온갖 폄훼의 말이 쏟아져 나왔다. 정말 그런가. 부부싸움 하다가 애국가가 나오자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에서는 헛웃음이 나온다. 지금의 잣대로 보면 좀 촌스럽고, 몸을 오그라들게 하는 대사도 없지 않다. 그렇다고 그게 강요인가. 덕수가 사느라 힘들었다고, 힘든 세상풍파를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어서 참 다행이라고 한 말을 공치사로 받아들이는가. 듣기 싫다고 말도 못하게 한다면 과거를 어떻게 보겠다는 것인가.
국제시장은 현대사의 비극적 시대를 살아온 아버지 세대들의 삶의 얘기다. 그들의 삶에 거짓이 없다면 그걸 굳이 흠집내고 깎아내리려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공치사가 됐건, 자기고백이 됐건, 아니면 늙은이의 넋두리가 됐건 말이다.
어떤 젊은 필자는 “대한민국이 누리는 풍요는 그 시절 억척스럽게 고생한 그들 덕분이라고 은근히 강조하는 듯한 점은 다소 실망스럽다. 그들의 추억담은 청춘을 향한 훈계다. 고난의 시기를 살았다는 것을 훈장 삼아 그들은 틈만 나면 젊은 세대를 가르치려 한다”고 칼럼에서 썼다. 정말 그런가. 젊은이들한테 뭐라도 한마디 하면 봉변당할까봐 주저하는게 요즘 어른들 아닌가. 어른들 말을 귓등으로라도 듣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되나.
‘미생’을 결부시켜 ‘국제시장 세대’니 ‘미생 세대’니 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느끼는 좌절감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비정규직을 전전하고 그마저도 취직이 안돼 연애, 결혼은 생각지도 못한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 세대’를 넘어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도 포기하는 ‘5포 세대’라는 말도 나온다. 한국일보 인턴사원들이 새해에 거는 희망 1순위도 취업이었다. 정치적으로는 암울했지만 산업적 팽창 시기에 성장하면서 그리 취업 걱정은 안 했던 우리 세대 입장에서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고 왠지 미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분노를 기성세대에게 돌리고, 그들을 부정하려는 태도는 찬성할 수 없다. 국제시장의 덕수에게 화풀이할 건 더더욱 아니다. 영화에서 뭘 얻는다면 덕수도 그렇게 힘든 세상을 극복해 살았는데, 우리라고 못할 것은 없다는 긍정적인 생각 정도 하면 그만이다.
새해 신년사에서 올해는 모두가 함께 하자는 덕담과 각오를 쏟아냈다. 그런데 며칠도 안돼 그것도 영화 하나를 놓고 이렇게 모진 소리를 내뱉어서야 어떻게 1년 동안 수없이 맞닥뜨릴 더 험한 일을 버텨 나갈 수 있을까. 죽자고 덤벼들 영화가 아니다.
황유석 여론독자부장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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