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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역원 외국어 교육, 강남 학원 뺨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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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역원 외국어 교육, 강남 학원 뺨치네

입력
2015.01.06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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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교육ㆍ문제은행ㆍ구어 중심으로

중국ㆍ몽골ㆍ일본ㆍ여진 4개 언어 교육

시험 채점 땐 응시자 정보 봉인까지

언어학자 정관 교수, 오랜 연구 끝

600년 교육의 비밀 찾아 책 출간

정광 고려대 명예교수는 “외국어 학습을 위한 역학서에는 생생한 당대의 언어가 기록돼있다”며 “언어 교육의 역사는 물론 언어의 변천사를 알기에 훌륭한 사료”라고 말했다. 정 교수가 들고 있는 책은 조선시대 사역원에서 일본어 교재로 쓰였던 ‘첩해신어’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정광 고려대 명예교수는 “외국어 학습을 위한 역학서에는 생생한 당대의 언어가 기록돼있다”며 “언어 교육의 역사는 물론 언어의 변천사를 알기에 훌륭한 사료”라고 말했다. 정 교수가 들고 있는 책은 조선시대 사역원에서 일본어 교재로 쓰였던 ‘첩해신어’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일찍이 조선시대에도 외국어 조기교육에 눈 뜬 이들이 있었으니 천녕(川寧) 현(玄)씨 집안이 그랬다. 영조 6년(1730년) 현계근이 다섯 살의 나이로 사역원에 입학한 것이다. 사역원은 역관(통역관)을 길러내는 곳이었다. 고려 충렬왕 때 만들어진 통문관을 이은 기관이다. 고려와 조선시대를 아우른 국책 외국어 교육기관인 셈이다.

계근은 처음엔 일본어를 배우는 왜학 생도방에 입학했지만 중도에 중국어(한학)로 ‘전공’을 바꾼다. 초시에 합격하고는 다음 시험을 한 차례 미룬 뒤 왜학으로 다시 이적하기도 한다. 현씨 집안에서 9대에 걸친 역관 6명과 관련된 문서를 보관해온 덕분에 전해지는 사실이다. 사역원 입학부터 진급 등 개인의 일생뿐 아니라 역과 시험의 시권(시험지이자 답안지)까지 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기증 받아 보관해온 이 고문서들에서 언어학자 정광 고려대 명예교수가 조선시대 외국어 교육의 비밀을 찾았다. 그 내용을 최근 출간한 ‘조선시대의 외국어 교육’(김영사)에 담았다.

조선시대의 외국어 교육은 세 가지가 기본이었다. 먼저 조기교육이다. 정 교수는 “현계근의 예를 볼 때 그처럼 어린 나이에 사역원에 입학한 예가 드물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둘째는 문제은행식 출제다. 요즘의 토익(TOEIC)처럼 말이다. 현씨가의 역과 시권에서 정 교수는 실마리를 찾았다. 시권의 문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번호가 적혀있었던 것이다. 답은 사역원에서 사용했던 외국어 교재에 있었다. 교재에도 알 수 없는 시권과 같은 번호들이 적혀있었다. 정 교수는 “시험 당일 아침 교재에 번호들을 써놓고 산통을 흔들어 뽑힌 번호의 대목에서 문제를 출제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답안 심사는 ‘블라인드 채점’이었다. 시권에 응시자의 이름과 사조단자(四祖單子ㆍ부, 조부, 증조부, 외조부의 이름ㆍ벼슬 등을 적은 종이)를 적은 부분은 말아 올리고 풀로 봉했다. 정 교수는 “출제도 채점도 엄정하게 하려 두루 신경을 썼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역원이 철저한 구어 중심의 교육을 한 것이 세 번째다. 일본어 교재로 쓰였던 ‘첩해신어(捷解新語)’가 특히 정 교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 책은 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던 강우성이 귀환해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일본어 교과서’다. 정 교수는 “비속어까지 넣었을 정도로 철저한 실용어 중심”이라며 “살아있는 말을 가르쳤다는 점에서 감탄했다”고 말했다. 일본어뿐만이 아니다. 조선시대 관리의 자격을 가늠하는 외국어였던 중국어 교재인 ‘노걸대(老乞大)’와 ‘박통사(朴通事)’도 생생한 구어를 수록한 회화 교재였다.

정 교수는 “지정학적 위치와 외세의 위협 탓에 조선은 일찍이 인접 국가의 언어를 익힐 필요성을 느꼈다”며 “사역원에서 중국어, 몽골어, 일본어, 여진어의 4개 언어를 가르쳤다”고 말했다.

이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정 교수는 “사역원은 고려 충렬왕 2년에 설치된 통문관에서 시작해 갑오경장으로 없어지기까지 600여 년 간 건재했다”며 “이처럼 전문적인 국책 외국어 교육기관이 수백 년 간 유지된 나라는 드물어 세계에 자랑할 만하다”고 말했다.

‘조선시대의 외국어 교육’은 정 교수가 명목이 밝혀지지 않은 채 대학 도서관에서 잠자던 문서 두루마리, 서지학자도 두 손 든 문헌들을 파며 30년 간 연구한 결과물이다. 정 교수는 “알고 보니 그 문서들이 바로 만주어 시권이고 ‘노걸대’ 원본이어서 무릎을 쳤었다”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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