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 제도를 동시에 채택하고 있다.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에서 비례대표 제도를 함께 채택한 이유는 지역의 대표로 선출되는 선거구 국회의원들이 국정에 반영하지 못하는 다양한 직능집단의 이익을 입법과정에 대표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한국선거에서 비례대표제도는 사회의 다양한 의견이나 이익을 대표하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 이유로는 첫째, 전체 국회의원 300명 중에서 비례대표 의원수는 54명으로 18%에 불과한데 그나마 비례대표 의원의 80% 이상을 여당과 제1야당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20% 내외 의석만이 제3당 이하에게 배분되어 다양한 정당에게 이익대표의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비례대표 당선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민주화 이후 1988년부터 2012년까지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자 393명의 경력과 직업을 분석해보면, 당직자를 포함한 정치인이 35%, 단체대표 19%, 기업인 15%, 교수·연구자 14%, 시민단체 8% 등의 순으로 많게 나타났다.
이처럼 당선자들의 직업이나 경력이 특정한 집단에 편중된 결과는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의 공천문제와 관련성이 깊다. 한국정치에서 정당은 특정 정치인을 중심으로 창당, 소멸해가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이러한 사당화 경향으로 정당 보스가 마음대로 비례대표 후보를 공천하는 것이 관례화되었다. 측근 정치인과 당직자에게 논공행상이 이루어지게 되면서 이들의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난 것이다. 기업인이 많은 이유는 정치자금조달을 목적으로 매관매직의 폐단이 만들어낸 결과다. 사당적 운영의 전형인 ‘3김 정치’가 끝난 이후 최근에는 계파정치가 이를 대신하고 있다. 결국 비례대표 제도는 국민들의 정치 불신을 넘어 ‘정치로부터 도피’를 조장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비례대표 공천제도의 대안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비례대표 공천에서는 공천과정의 폐쇄성과 공천이 정당보스나 계파수준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 주로 지적됐다. 하지만 비례대표 공천의 기본원칙은 투명성과 당원이나 일반시민의 참여 보장에서 찾아야 한다. 즉, 투명성과 참여의 보장은 정당 명부의 작성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고, 후보자의 순위결정 과정이 현재와 같이 특정 정치가나 계파간 권력논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당원이나 일반시민의 참여가 가능한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와 같이 각 정당이 외부인을 영입하여 만드는 공천심사위원회와는 차원이 달라져야 한다.
첫 번째 구체적인 대안으로는 스웨덴식 정당명부 작성 방안이다. 정당은 비례대표 후보에게 요구되는 자격요건이나 자질을 제시하고 신청자를 모집한 후, 공개적인 절차를 거쳐 1차로 예비후보자를 결정한다. 그 다음으로 정당명부의 순위결정은 정당의 대의원, 당원 그리고 일반시민이 참여하는 당내 예비선거를 통해 순위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법은 정당보스나 파벌논리에 따른 전횡을 예방할 수 있다는 장점과 동시에 정당운영의 개방성, 민주성을 높이게 되면서 당내 민주주의에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당명부 순위를 결정하는 선거가 과열되거나 특정조직의 동원에 따른 불법 선거운동은 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함으로써 해결 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대안은 정당명부의 순위결정 예비선거가 어렵다고 한다면, 브라질, 일본 등에서 실시하고 있는 개방형 명부제도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한국은 비례대표 선거에서 후보자의 순위가 고정된 정당명부를 기준으로 투표한다. 개방형 명부제도는 정당이 제시한 명부를 토대로 정당을 선택하여 투표해도 되고 정당명부에 등재된 후보자에게 투표해도 된다. 의석배분은 정당투표와 후보자투표를 합산하여 전체 의석을 배정한 후, 후보자의 득표순으로 의석을 배정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정당이 후보자의 순위를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측면에서 계파논리가 작동할 소지가 적어진다. 그리고 후보자가 열심히 선거운동을 전개하게 됨으로써 정당의 득표율이 높아지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비례대표 공천의 대안들은 정당정치 발전에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즉, 새로운 지지자를 발굴하고 외부와 소통하는 계기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선거를 계기로 당원이나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정당의 장기적 비전이나 정책을 홍보, 토론하는 기회를 주기적으로 만드는 일은 새로운 지지층을 발굴하는 기회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대의 민주주의에서 선거가 국민의 의사를 국가 의사결정 기구인 의회 구성에 반영하는 장치라고 한다면, 정당도 민주적인 절차와 방법으로 참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정당은 보다 민주적인 공천방법으로 응답해야 할 것이다.
고선규(선거연수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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