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대학살'이 묻는다… 악은 평범한가 특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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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대학살'이 묻는다… 악은 평범한가 특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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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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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의 종언과 더불어 나치 독일의 잔혹한 행위들이 드러났다. 특히 600만명 이상의 유대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내용이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유대인 학살의 길은 1935년 독일 뉘른베르크 법에서 시작했다. 이 법에 따라 유대인들은 모든 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했고, 심지어 유대인과 독일인의 성관계마저 금지됐다. 유대인들은 처음 국외로 이주하도를 강요받았고, 이후 사회적인 강제 분리, 강제수용소로 이송, 그리고 결국 아우슈비츠와 같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학살 당했다. 유대인 문제를 ‘최종 해결책’을 통해, 즉 유대인 모두를 절멸시켜 해결하려던 작업은 아돌프 히틀러의 지시와 나치 2인자 하인리히 힘러의 최종지휘책임 하에, 아돌프 아이히만이 가장 체계적으로 또 ‘탁월한 방식’으로 수행했다.

전쟁이 끝난 뒤 히틀러와 힘러는 자살했고 많은 전범들이 뉘른베르크에서 재판을 받았지만, 아이히만은 사라졌다. 그는 수년간 숨어 지내다가 이탈리아를 거쳐 아르헨티나로 도망했다. 이후 1960년 5월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체포ㆍ압송돼,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며 세기의 재판을 받게 되었다.

1961년 4월 예루살렘 법정에서 나치 정부 당시 유대인을 학살한 혐의로 전범 재판을 받고 있는 칼 아돌프 아이히만(가운데)의 모습. 가디언 홈페이지

● “악마는 평범했다”는 한나 아렌트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정치철학자이자 유대계인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과 같은 해인 1906년에 태어났다. 부모는 독일 사회로 완전히 동화된 지식인들이었고, 그는 유대인의 자각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렌트가 유대 민족의 운명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것은 20대 후반이다. 그는 원래 철학과 기독교 신학에 관심이 있었다. 나치 세력이 커져가고 유대인에 대한 압박이 심해지던 중 아렌트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목표로 삼는 시온주의자들의 부탁을 받아 도서자료 수집을 도왔고, 그 일로 비밀경찰에 체포돼 일주일간 심문을 받고 몰래 프랑스로 탈출했다. 그의 유대인 연구가 시작된 것은 거기서였다.

프랑스에서 수용소로 끌려가 아우슈비츠로 이송될 뻔 한 상황에서 극적으로 다시 도망쳐 미국으로 망명한 뒤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라는 저서를 써서 학문적 명성을 얻었다. 1950년에 미국에 귀화했고, 약 10년 뒤 프린스턴대 최초의 여성 전임교수가 된 아렌트는 1960년 아이히만의 체포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으로 건너가 재판을 참관했다. 당시 보고 들은 것을 녹여 1963년에 재판 관련 기사를 연속으로 출간했고, 뒤에 이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으로 냈다. 이 책으로 아렌트는 유대인 사회의 비판의 중심에 서게 됐다.

사람들이 예상했던 아이히만의 모습은 악마와 같은 희대의 살인마였다. 하지만 아렌트가 책에서 묘사한 아이히만은 지극히 정상의 정신 상태를 하고 있었고, 가족을 챙기는 부족함 없는 아버지이며, 자기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는 공무원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주어진 (나치의) 법을 잘 수행하는 시민이었다. 다만 그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타인의 입장에 서서 생각할 줄 몰랐으며, 자신이 행하는 일의 의미를 물어보지 않고 그저 맡겨진 일에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행한 일의 결과는 엄청난 악이었지만, 그 악의 뿌리는 오히려 평범한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아이히만에게서 우리는 악의 평범성만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책에서 아렌트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유대인 사회는 아렌트의 이런 평가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의 친한 친구들도 등을 돌렸다. 아렌트 못지 않게 유명한 철학자이자 절친이었던 한스 요나스가 절교를 선언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전세계 학계의 반응은 대단했다. 이 주제에 대해 수많은 저술과 논문들이 쏟아져 나왔고, 홀로코스트 같은 사건을 다루는 학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이 책을 평가하는 유대인과 비유대인 사이의 간극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 스탕네트 “악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001년에 독일에서 출간돼 지난해 영어로 번역된 베티아 스탕네트의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은 아이히만과 관련된 이 같은 아렌트의 명성에 직격탄을 날려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스탕네트에 따르면 아이히만은 재판정에서 사형을 받지 않기 위해 가면을 쓰고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를 했다. 그 연기가 실패해 죽음을 피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아렌트는 그 연기에 속아 넘어갔다는 것이다.

스탕네트는 시기적으로 아렌트가 접할 수 없었던 자료들에 근거해 주장을 펴나갔다. 1990년대가 지나서야 공개된 수많은 자료들을 근거로 스탕네트는 전쟁 수행 중 아이히만이 단지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에 불과했다거나 전후에는 원래의 순진한 모습으로 지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아이히만은 나치 잔당들과 모임을 가졌고, 국가사회주의의 재건을 설계했으며, 1950년대 당시 독일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에게 서한을 보내 자신의 주장을 펴려고 했던 확신범이었다. 그는 토끼 교배 사업이 실패로 돌아가자 나치 전범 요제프 멩겔러의 친척 소유 공장에 취직했고, 딸의 남자 친구도 전범의 아들이었다.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서 남겨놓은 글들에는 공격 성향을 드러내는 욕설과 모욕적 언사가 넘쳤다. 그가 남긴 글들과 인터뷰 자료를 보면 그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자신의 역할을 추구했으며, 청년들에게 새 시대의 심볼이 되기를 원했다.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스탕네트는 아렌트가 비록 제한된 자료를 갖고 최선을 다해 연구를 수행했으며 또 용기 있는 판단을 내리기는 했지만, 가면을 쓴 아이히만에게 결국 속았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세상에 나온 뒤에 사람들의 관심과 연구의 초점은 ‘악의 평범성’ 개념을 중심으로 맴돌게 되었고, 정작 문제의 중심이어야 할 아이히만의 행태나 홀로코스트로부터 사람들의 시선은 멀어졌다고 비판한다. 아렌트가 의도한 결과는 이런 것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지난해 9월 영문으로 출간된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

● 아렌트의 선구적인 통찰은 변함없어

유대인들에게 아렌트는 묘한 존재였다. 아이히만과 관련되기 이전에도 아렌트는 유대인 주류 사회와 많은 점에서 의견이 달랐다. 예를 들면 유대인 독립국가 건설 문제를 놓고도 그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대인 연합체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독립적인 주권국가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했다. 국가 없는 민족으로 받았던 수난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는 자신의 주권국가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였다.

하지만 아렌트는 반대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이미 팔레스타인 사람과 아랍인, 그리고 유대인이 공존하며 살고 있었다. 유대인은 소수였다. 거기에 유대인의 주권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은 결국 다수 인종을 정치적 소수자로 전락시켜 자기 민족이 당했던 일을 똑같이 당하게 하는 것이라고 아렌트는 비판했다. 그의 지적은 이미 현실이 된지 오래다.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담긴 통찰은 아이히만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인간 자체에 대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점을 항상 간과해왔다. 양심적인 유대인들에게 아렌트는 용기 있는 학자로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 예컨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비인도적 행위에 비판을 주저하지 않는 그런 유대인들이다.

새로운 사실에 근거한 스탕네트의 연구는 아이히만에 대한 평가에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해 많은 것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사실관계에 대한 수정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렌트가 해놓은 작업의 중요성이 스탕네트의 책으로 뒤집히지는 않을 것 같다. 세일라 벤하비브 미국 예일대 교수는 스탕네트의 책 때문에 아렌트의 인간의 악행에 대한 평가 자체가 근본적으로 수정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스탕네트의 책이 나온 뒤 아이히만에 대한 아렌트의 용기 있는 판단과 평가를 중심으로 한 ‘한나 아렌트’라는 영화가 나온 것도 흥미롭다.

유대인 사회와 아렌트의 갈등 관계를 염두에 둘 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번역했던 사람으로서 무엇보다도 스탕네트의 연구가 가져올 아렌트에 대한 학문적 연구의 정치적 지형 변화가 궁금해진다.

김선욱 숭실대 교수ㆍ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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