칫솔과 물만 갖고 복원한다더라. 그런데 막상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새로 구워낸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놓아 허물어져가는 벽면이 간직했음직한 품격을 잃어가는 유산이다. 영화에서 보고 사진으로 동경하던 콜로세움 앞에 섰다. 인도인이라 추정되는 사람의 구루 흉내에 동전을 던져주고 신기한 구경거리를 카메라에 담고 나서 말이다. 조상 팔아 먹고 사는 것이 어디 로마 뿐이겠냐마는 세상을 호령하던 제국이라는 환상에 더해 갖출 것 다 갖춘 관광도시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테니 눈도장 한번쯤 찍는 것은 행운일터. 고대로마의 마지막 건축물로 알려진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나마 멀쩡히 서있어 눈이 호강하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한국-이탈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작년 한해 각종 행사가 양국에서 꼬리를 이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직전에 올 3월까지 계속될 마지막 행사로 막시 현대미술관에서 한국 미디어아트전시를 개막했다. 이를 주최한 국립현대미술관을 후원하며 기왕이면 공연을 더해 행사를 풍요롭게 만들자고 한 것은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이다. 자, 공연이라. 수많은 작품과 예술가가 있지만 한세기를 넘긴 우호관계를 상징적으로 대변하기 위해서라면 고급스럽고 묵직한 것이 필요한데, 어느 구멍에 끼워 넣을지는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단추를 만들어보자. 그래서 처음 계획했던 것은 인간문화재부터 미디어아트까지를 잇는 종합선물세트였다.
하지만 사진을 보는 순간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미술관이 공연을 위해 내놓은 것은 세미나 전용 홀. 대체 뭘 기대했던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의 작품이라는 막시는 딱 제 사용처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근사한 홍보용 사진을 구석구석 살펴봐도 당연히 무대는 없고, 조명을 비롯한 모든 장비가 못하나 박을 데 없어 뵈는 이 홀에 몽땅 들어가야 하는데 어지간한 것에 쫄지 않을 정도로 겪었다고 믿던 자만심이 도전 앞에 흔들린다. 그래도 이 홀만 문제였다면 어떻게든 우겨볼 작정이었는데 대사관을 통해 전해온 미술관의 입장은 “미디어아트 공연을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을 다 빼라”는 것이다. 결국 머리 자르고, 꼬리 날리고 이제 남은 것은 각개전투 뿐. 간신히 동양화 드로잉과 함께 연주하는 음악을 살려내 선곡과 편집을 다시 하고 미디어아트 춤 공연은 제작에 들어갔다.
동년배 최고 실력파 연주자들의 생황과 피리, 장구 그리고 해금이 피아노 반주와 어우러졌다. 그리고 이들 뒤 화폭에서는 매화가 실시간으로 피어난다. ‘풍년가’와 ‘쑥대머리’ 그리고 ‘찬기파랑가’에 관객은 넋을 놓았다. 이어 깔끔한 영상과 호흡하는 무용수를 연신 찍어대고 남자무용수들은 테크노버전 ‘볼라레’와 ‘강강술래’에 맞춰 관객들과 춤을 춘다. 나가자는 아버지를 뿌리친 소녀는 계단에 주저앉아 버렸고 앉을 자리가 없어 벽에 기댄 사람들은 땀으로 몸을 적셨다. 공연이 끝나고도 떠나지 않는 관객들에게 둘러싸인 출연자들이 받아준 박수. 바로 이것이 문화의 힘이고 오롯이 역사를 품고 세상에 나왔기에 존중 받아 마땅한 가치였다.
로마, 짧게 겉만 훑었으니 섣부른 얘기일 수 있겠다. 세척만 해서는 견뎌내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뚱맞아 서글픈 벽돌을 보려고 굳이 그 멀리까지 날아갈 필요는 없지 않나. 하긴 복원된 숭례문 옆을 지나며 차라리 눈을 감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는 우리니 입을 열기 민망하기 짝이 없다. 언제건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잔해를 옆에 두고 살아야 하는 그들에게 매우 이기적인 요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동경하는 유산이 만들어준 수익을 세련되고 감각적인 디자인에 투자해 고부가가치를 생산해내는 그들이다. 그리고 나는 기품 있는 콜로세움을 보고 현란한 색의 마술에 취한 관광객이 되고 싶다.
현지 홍보관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서 오페라는 관광용으로 유지할 뿐 일상적이지도, 환영 받지도 못하는 천덕꾸러기다. 우리는 판소리를 외면하고 전통춤을 무시한다. 그렇다고 이제와 싫은 것을 억지로 보고 들을 수 없지만 문화는 우리시대 다양한 삶의 모습이며 예술은 그 형태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것이기에 존중 받아 마땅한 가치는 있는 그대로 남겨두어야 하지 않을까?
김신아 아트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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