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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위조지폐와 해킹

입력
2015.01.05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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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재무부의 한 장짜리 보도자료가 몰고 올 평지풍파를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중국 베이징에서 6자 회담이 진행 중이던 2005년 9월 16일로 북한이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을 통해 위조달러를 유통시키고, 마약 등 불법대금을 거래한 사실이 드러나 이 은행을 요주의대상으로 지정한다는 내용이다. 사흘 뒤 한반도 비핵화 얼개를 담은 9ㆍ19 공동성명에 합의했으니, 북한도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여겼음이 분명하다.

▦ 미 금융기관과의 거래가 막힌 BDA는 북한자금 2,500만달러를 동결했고, 국제적 대북 금융거래 중단 사태로 확산됐다. 돈줄이 막힌 북한은 ‘제재의 고깔모자를 쓰고는 회담에 나설 수 없다’며 장거리미사일 발사시험과 핵실험으로 대응했다. 남북관계를 6자 회담 진전에 맞출 수밖에 없었던 노무현 정부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지켜볼 도리밖에 없었다. 북미간 금융제재 협의에 이어 북한자금 동결 해제로 북핵 진전의 길이 열린 것은 2007년 2월이다. 북한은 불법행위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2,500만 달러를 주민생활 개선 등 인도적 사업에 쓰기로 합의한 걸로 보면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겠다.

▦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을 다룬 영화 ‘인터뷰’ 제작사인 소니 픽처스 해킹 사건과 관련, 정찰총국 등 북한 기관ㆍ단체 3곳과 개인 10명을 금융제재 대상으로 지정하는 행정명령을 2일 발동했다.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 소행이라는 FBI 조사결과를 토대로 ‘비례적 대응’을 공언했고, 재무부에 향후 더 포괄적인 제재권한을 부여해 파장이 얼마나 커질지 알 수 없다. 오바마의 대북 강공은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담은 남북 정상의 신년사 발표 다음날이어서 관측이 무성하다.

▦ ‘한미공조 균열’이니 ‘남북관계의 속도조절 촉구’ 의미니 하는 말이 있지만 미 정부가 남북관계를 신경 쓸 계제가 아니다. BDA 제재 당시 미국은 “불법행위는 협상대상이 아니다”는 완강한 입장으로 맞섰다. 거듭된 합의 파기로 미국 내에서 ‘사기 정권’으로 낙인 찍힌 북한의 소니 해킹은 미국에 대한 직접 공격으로 간주하고 있을 터이다. 오바마 행정명령에 대해 “적절한 대응조치인 것으로 평가한다”는 외교부 성명은 우리 정부의 어정쩡한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게 맞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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