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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열의 볼링그린다이어리<82>미국생활을 정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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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열의 볼링그린다이어리<82>미국생활을 정리하며

입력
2015.01.05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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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공부를 계속할까 아니면 해설을 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갈까 고민하고 있을 때, 후배 (최)원호가 이렇게 이야기 했다. “형이 미국에서 공부하는 이유가 교수님을 하기 위한 것이냐? 아니면 야구를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냐?” 그 말에 바로 하던 공부를 접고 들어오기로 결심했다.

학창시절에 학교를 다녔지만 하지 못했던 공부, 더구나 영어 공부는 나에게 너무나 벅찬 과정이었다. 랭귀지 스쿨을 다니며 매달 치러야 하는 시험에서 과목당 75점을 얻지 못하면 레벨을 올라가지 못하게 되고 그것이 3번 연속되면 학교를 바꾸든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룰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정규 수업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숙제를 하고 나면 거의 밤 10시가 넘어야 마칠 수 있었던 랭귀지 스쿨을 1년을 넘게 다니며 졸업을 했을 때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입학한 커뮤니티 칼리지…사실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큰 일 이었다. 이렇게 입학해 다니던 학교를 내가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 후 망설임 없이 미국생활을 접고 한국행을 선택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3년 동안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본인 스스로 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무엇인가 가르쳐야 하고 반대로 어린 아이들은 시키는 것만을 충실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결코 그것이 전부 옳은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무엇이 스스로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을까? 거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 즉 인내다. 3년간의 미국생활에서 인내하면서 깨닫게 된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야구선수로서 스스로 느끼고 생각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우리의 코칭 방법은 선수가 제대로 할 수 있게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보다는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가르쳐 주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선수에게는 열심히 안 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모순이 있다. 코치가 지도하는 대로 열심히 따라 했을 때 모든 선수들이 좋은 선수로 발전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되기가 어렵다. 세상에 제일 어려운 것이 ‘자식교육’이라는 말이 있듯이 선수들을 성장시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친구들은 선수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방법을 택해서 훈련을 진행한다. 선수들이 궁금한 것이 있으면 그때서야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해주는 방식이다. 이 방법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렇다 보니 지켜보는 코치의 마음은 답답할 때가 많다. 특히나 나 같이 한국에서 ‘빨리빨리’ 문화 속에 성장한 사람에게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힘든 인내의 시간일 때도 많았다. 우리는 선수에게 코치가 무엇인가 가르치지 않고 기다린다면 열심히 하지 않는 코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기 때문에 가르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코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어떻게 해야 선수를 잘 가르칠 수 있나요? 라고 질문을 했을 때 “선수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야” 라고 말씀하셨다. 보통 선수들이 지명을 받고 프로에 들어오면 스윙 폼이건 투구 폼이건 코치가 바꾸려고 하는 경향이 많으며 그렇게 해서 망가진 선수들도 상당했기 때문에 조심해서 코칭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선수가 프로에 지명을 받고 들어왔다면 그 선수의 장점이나 강점이 있기 때문인데 그것을 살려주지 못하고 다른 쪽으로 바꾸다 보면 정작 본인의 장점은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두 번째 아빠로서의 자리이다. 한국에 있을 때 건우, 우영이와 진솔한 이야기를 해 본적이 별로 없다. 선수 때는 원정경기나 전지훈련으로 집을 비울 때가 많았고, 야간 경기 후에 들어오면 아이들은 자고 있었다. 또 아침에 늦게 일어나면 아이들은 학교나 유치원에 가고 없었기 때문에 이야기는 둘째치고 얼굴을 보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코치가 되면 나아질까 했지만 역시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오는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아이들 학교와 운동하는 장소에 언제나 부모가 차로 데려다 주어야 하기 때문에 같이 붙어 다니는 시간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고 아이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고민이 무엇인지 등 아빠의 자리가 생기게 된 것이다. 특히나 아들인 건우하고는 왠지 어색한 관계였는데 이제는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는 사이로 발전한 모습을 보며 미국에 와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 중에 하나라고까지 생각한다. 또 건우는 아빠가 단순히 직업이 야구선수라고 생각했다가 내가 미국 선수들을 가르치며 그 선수들이 좋아하고 따르는 모습을 보고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해준 적이 있다. 사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빠로서 가장 보람 있고 뿌듯했다. 한때 돈과 명예를 위해 뛰는 것이 성공의 기준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가장 기본인 가정에서 인정을 못 받는 사람에게 그것들이 과연 대단한 일일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인생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크게 배웠다. 이곳에 계신 많은 교수님들의 도움 그리고 한국에서의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으며 더불어 사는 것이 인생이고 주변의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배우게 해준 뜻 깊은 3년이었다. 이 자리를 빌어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볼링그린 하이스쿨 코치ㆍ전 LG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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