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구역 확대로 간접흡연 피해 속출
4일 오후 서울 광진구 건국대 앞 사거리. 카페와 술집 등이 밀집한 번화가는 주말 인파로 북적댔지만 매캐한 담배 연기도, 바닥에 쌓인 담배 꽁초도 자취를 감췄다. 지난해 11월 광진구가 건대입구역 2번 출구 앞에 10㎡ 남짓한 흡연실을 설치한 뒤 달라진 풍경이다. 광진구에 따르면 이 작은 흡연실은 하루 평균 3,000여명이 이용한다. 이 지역에서 3년째 광고 전단을 돌리는 배모(61)씨는 “흡연실이 생기고 나서 길거리 담배 꽁초가 90%는 줄었고 담배 연기 때문에 기침을 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1일부터 금연구역을 100㎡ 미만 음식점과 PC방 등까지 전면 확대, ‘담배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흡연자들이 떼지어 거리로 몰려나오고 있다. 그러나 실외 흡연실은 서울역,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처럼 시설 관리주체가 설치한 것과 동서울터미널처럼 지방자치단체가 설치한 3곳 등 서울시내 열 곳도 되지 않는다. 길거리 간접흡연 피해가 속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천식 환자인 대학생 김모(21)씨는 “새해 들어 길거리 흡연 때문에 밖에 나가기 무서울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흡연자들은 피해를 주지 않고 속 편하게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공간을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카페 흡연석조차 운영이 금지되자 애연가들은 흡연실을 찾아 다니느라 몸도 마음도 고생이다. 10년간 담배를 피웠다는 신모(26)씨는 “(정부가) 담뱃값을 올리고 금연구역을 확대한다고 해서 갑자기 담배를 끊을 수는 없지 않느냐”며 “사람들 눈치 안 보고 담배를 피울 수 있는 흡연실을 많이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흡연 8년차 송모(32)씨도 “금연구역 확대로 가장 피해를 보는 건 길거리에서 간접흡연을 참아야 하는 비흡연자와 늘어난 담배 꽁초를 줍는 환경미화원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설치된 흡연실의 관리도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동서울터미널역 안에 있는 흡연부스는 환기가 잘 되지 않아 부스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더 많다. 대학생 황모(24)씨는 “흡연실 안은 담배 찌든 냄새가 심해 들어갈 수가 없다”며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흡연실은 혐오시설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실내 흡연실 설치에는 반대하지만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는 적극적으로 실외 흡연실을 설치,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성규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연은 흡연량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끊어야 성공할 수 있어 정부의 금연구역 전면 확대는 올바른 방향”이라면서도 “길거리 등의 간접흡연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적합한 시설을 갖춘 실외 흡연시설을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시내 번화가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흡연실을 추가로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민정기자 fac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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