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새해가 시작됐다. 2014년의 마지막 달과 2015년의 첫 달을 나는 스리랑카에서 보내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추위를 견디기가 힘겨워 작년부터 기후가 온화한 곳에서 겨울을 나고 있다. 물론 생활비도 서울보다 적게 드는 나라들이다. 덕분에 난방비 걱정 없이 몸은 편하게 지내지만 이런저런 불편함이 따라온다. 세상을 떠돌수록 깨닫게 되는 점은 이 세상 어디에도 이상향 샹그릴라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 어느 곳에도 그늘이 깃들지 않은 양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늘 확인한다. 그러니 어디가 되었든 여기 내가 있는 자리에,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을 다해 살아가고자 애쓸 뿐이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스리랑카의 산간마을 하푸탈레다. 해발고도 1,400㎙인 이곳은 주변이 차밭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마을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부드러운 물결을 이루는 차밭이 시야를 채운다. 무성한 초록의 향연이다. 고지대에서 재배되는 이 동네의 차는 품질이 좋기로 스리랑카에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의 삶은 차 한 잔의 여유를 누릴 만큼 넉넉하지 않다. 하루 8시간 동안 14~16㎏의 찻잎을 따고 여자들이 받는 돈은 우리 돈 6,000원 남짓. 아무리 물가가 싼 스리랑카라지만 그 돈으로는 생활이 녹록하지 않다. 찻잎을 따서 꾸려가는 이들의 일상은 그녀들이 일하는 차밭의 경사만큼이나 가파르다. 차밭 사이를 걷다 보면 그들이 사는 집을 지나가게 된다. 슬레이트 지붕을 올린 집들이 산중턱마다 위태롭게 서있다. 하나같이 보잘것 없는 집들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 같은 걸 품기 힘든 고단한 삶의 흔적이 신산한 살림마다 배어있다.
그런 집들 중에도 가끔 내 눈을 끄는 집이 있다. 숙소로 오가는 길에 지나가게 되는 작은 집도 그런 곳이다. 그 집은 담장을 세울 여력도 되지 않아 얼기설기 나뭇가지를 세우고 비닐을 덮어 울타리를 만들었다. 그 초라한 비닐 울타리를 온갖 종류의 관목이 무성하게 뒤덮었다.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울창하게 어우러진 그 집의 담장은 부잣집의 높은 담벼락보다 근사하다. 누가 이렇게 멋진 울타리를 만들었을까 내심 궁금하던 차에 어느 오후, 분홍색 사리를 곱게 차려 입은 할머니와 집 앞에서 마주쳤다. 할머니는 풀을 뽑으며 담장의 울타리를 손질하고 계셨다.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손짓발짓으로 표현했다. 울타리가 참 예쁘다고, 집을 구경해도 되냐고. 할머니는 기꺼이 대문을 열어 안으로 나를 불러들였다. 매일 폭우가 쏟아지는 날들인데도 마당은 나뭇잎 하나 없이 깨끗하게 비질이 되어 있었다. 산사태로 무너진 뒷벽은 천을 덮어 깔끔하게 가려놓았다. 민트색 페인트를 칠한 단층집 주변으로는 작은 화분이 가득했다. 그 집을 둘러보는 동안 나는 마음이 뭉클해졌다.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자신의 인생에서 남은 짧은 날들의 하루하루를. 자신의 집 주변을 다듬는 일을 통해 삶에의 헌신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상을 가꾸는 그 정성스러운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한, 세상이 그녀를 시험에 들게 한다 해도 쉽게 좌절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할머니의 집은 세상이 아무리 시궁창처럼 지저분하다고 해도 자기 삶의 아름다움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여행을 떠나와서도 나는 마음 한 구석이 내내 불편했다. 아직 바다에 묻힌 아이들이 있는데 나 혼자 평화로워도 되는 걸까. 굴뚝에 올라가 한겨울 추위를 견디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 혼자 따뜻한 곳에 머물러도 되는 걸까. 세상을 바꾸겠다고 뛰어들지도 못하면서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렇다고 이 가난한 나라 스리랑카에 마음을 붙일 곳을 찾아낸 것도 아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곳 또한 인간의 온갖 모자람과 어리석음이 넘치는 땅이다. 하지만 스스로 작은 천국을 일궈낸 할머니 같은 분이 이 땅을 조금이나마 살만 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도 한 가지 뿐이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 몫의 천국 하나를 만드는 것. 저마다 쌓아 올린 그 하나하나의 개별적인 천국이 합쳐지면 세상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아름답지 못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지만 끝내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고 싶다.
김남희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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