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남북 양측의 적극적 대화의지 표명으로 오랜 만에‘쾌청’ 예보가 나왔던 남북관계 기상도에 미국발(發)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주말 북한의 소행으로 추정된 소니 픽처스 해킹 사건과 관련해 강도 높은 대북 제재조치를 담은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북한 정부와 노동당을 직접 겨냥한다고 명시하고 해킹을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정찰총국을 포함한 단체 3곳과 관련 개인 10명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는 내용이다.
북한의 강력한 반발은 뻔하다. 당장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어제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에서 “미국이 우리에 대한 압살정책에 집요하게 매달릴수록 선군 정치에 의거 나라의 자주권을 지키려는 우리의 의지는 더욱 굳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상태에서 남북대화 분위기가 순조롭게 이어지기는 어렵다. 지난 연말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의 선제적인 대화 제의에 이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최고위급(정상)회담을 포함한 남북대화와 교류협력 의지를 밝혀 한껏 고조되던 분위기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소니 해킹과 테러 위협의 배후로 북한 정부를 지목한 미 연방수사국(FBI)의 조사결과에 근거해 북한에 ‘비례적 대응’을 천명한 것에 비춰 대북 추가제재 행정명령 발동은 예정된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남북관계의 급진전을 막으려는 미 정부의 의도된 조치라는 식의 성급한 예단은 근거가 없다고 본다. 미 백악관은 이번 행정명령은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한 비례적 대응의 “첫 번째 조치”라고 밝혀 추가적 보복조치가 이어질 것임을 예고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북한이 소니 해킹의 배후라는 확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미 주요 언론들은 소니 해고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내부소행 가능성까지 거론 중이다. 미국 정부가 공개하기 어려운 확실한 근거가 있을 수 있다지만, 이 시점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를 서둘러 북한을 경직되게 만들고 남북대화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이 이미 많은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번 행정명령의 실질적 효과가 크지 않으며 상징적 의미에 그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일단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 행정명령을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에 대한 적절한 대응 조치”라고 평가했지만 내부적으로는 곤혹스러운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지탄받을 만한 불법적 행동을 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사안으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 휘둘리지 않도록 용의주도한 대응이 필요하다. 북한도 필요 이상의 과잉 대응을 해봐야 득 될 게 없다. 이런 때일수록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정상화의 활로를 찾는 게 바람직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