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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나치와 아르바이트

입력
2015.01.0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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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프랑스어를 가르치던 프랑스인 여교수와 이야기를 할 때 학생들이 무심코 아르바이트(arbeit)에 관한 얘기를 하면 그가 소스라치게 놀라던 기억이 있다.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그가 놀란 정확한 이유를 잘 몰랐다. 이제 와서 보니 아르바이트라는 단어를 들으면 그는 나치 수용소를 떠올렸던 것 아닌가 싶다. “아르바이트라는 말을 쓰지 마세요. 그건 나치가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쓰던 말입니다. 프랑스인들은 그 말에 치를 떨고 공포감을 갖습니다.” 대충 이런 내용으로 기억한다.

▦ 얼마 전 나치 독일 시대 악명 높았던 뮌헨 인근 다하우 강제노동수용소 철제 정문이 감쪽같이 사라졌다가 산산조각이 난 채 발견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네오나치주의자 몇 명이 저지른 짓이었다. 철제 정문 위에는 ‘ARBEIT MACHT FREI(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쓰인 철제 간판이 달려있다. 성경 말씀을 빗댄 문구가 그럴싸해 보인다. 하지만 다하우 수용소는 아우슈비츠처럼 정치범이나 종교인, 유대인들에게 강제노동과 인체실험 등 갖가지 만행을 저지른 곳으로 유명하다.

▦ 그래서 아르바이트란 단어에 대해 프랑스인 교수가 유독 거부감을 가졌던 모양이다. 아르바이트는 독일어로 노동, 일, 직업 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수용소에서 이 단어는 죽음에 이르는 강제노동을 의미한 것 같다.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이 단어는 임시직, 부업 등을 의미한다. ‘알바’로 축약해 쓰기도 한다. ‘껍질 벗긴 통나무’를 뜻하는 ‘마루타’와 합성한 마루타 아르바이트(Maruta arbeit)라는 용어도 나왔다. 자신의 몸을 인체실험용으로 제공해 돈을 버는 엽기 아르바이트라고 한다.

▦ 지난해 8월 출범한 ‘알바노조’에 따르면 국내 아르바이트 종사자 숫자는 500만명에 이른다. 아르바이트 전문포털 ‘알바천국’이 지난해 연령별 이력서 등록 건수를 분석한 결과 50대와 60세 이상이 전년 대비 각각 27.4%, 32.5%로 최대 증가율을 기록했다. 베이비부머들이 은퇴한 때문이다. 대학생뿐 아니라 은퇴자들도 알바에 가세한 것이다. 따라서 알바 직종에도 법적 보호장치 마련이 시급해졌다. 역사를 보나 현실을 보나 아르바이트, 알바라는 단어는 이래저래 불편하게 느껴진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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