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새해 들어 악수 대신 팔꿈치로 상대방을 툭 치는 방식으로 인사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는 “국내(한국)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보여주고자 국내 정치인들이 잘하는 악수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또한 지난해 말 ‘엉덩이 춤’ 동영상으로 “반기문도 저럴 때가 있구나”라는 걸 과시한 유머 감각 때문도 아니다. 반 총장이 국가원수급 인사로는 유일하게 주요 에볼라 발병 5개국을 모두 돌아본 ‘후유증’ 때문이다.
반 총장은 지난달 17~21일까지 에볼라가 창궐한 서부 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 기니, 시에라리온과 말리, 가나 등 5개국을 둘러봤다. 방문을 마친 뒤 미국에서 한 때 논란이 됐던 ‘21일 격리조치’를 자발적으로 따르는 게 낫다는 일부 의견이 나왔지만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업무를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평소대로 업무를 보되 손으로는 악수하지 않고 팔꿈치로 툭 치며 인사하는 ‘보완조치’를 하기로 했다.
반 총장은 에볼라 출장을 마친 뒤 뉴욕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예외 없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로부터 보건·의료 점검을 받았다. 또 방문 뒤 21일이 지난 오는 10일까지 의무적으로 뉴욕 보건당국에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체온과 구토 증상 여부 등을 통보해야 한다. 여기에 유엔 소속 의료진도 별도로 체온과 증상을 점검한다.
이번 출장은 시작부터 논란의 연속이었다. 우선 유엔 경호팀에서 ‘에볼라로부터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이에 반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이 직접 현장에 가지 않고서 어떻게 국제사회에 에볼라 통제를 독려할 수 있느냐”며 거절했다.
다만 반 총장은 자신을 수행할 유엔 직원들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을 의식해 방문단의 규모를 크게 줄였다. 통상 반 총장의 공식 출장에는 최소 12명 이상의 참모들이 수행한다. 이번 에볼라 방문단은 반 총장을 포함해 단 5명으로 꾸려졌다.
“수행단을 최소화하고 남성으로 하되 희망자에 한한다”는 반 총장의 지시도 내려졌다.이에 방문단은 반 총장을 지근 거리에서 돕고 있는 장욱진 보좌관, 에볼라 담당 국장, 대변인실 미혼 남성 직원 1명, 사진기사 1명으로 단출하게 꾸려졌다.
반 총장 일행이 에볼라 창궐 국가에 진입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 국가로 진입하는 항공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근 국가까지는 민항기를 탄 뒤 이후에는 낡은 유엔기를 타고 방문 일정을 소화했다.
반 총장의 방문에 현지의 반응은 뜨거웠다. 누구도 선뜻 찾으려 하지 않는 곳에 몸을 사리지 않고 와 준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현지 공항에는 해당 국가의 각료 전원이 나와 반 총장을 맞았다.
에볼라 발병국에서도 반 총장의 안전 문제가 불거졌다. 에볼라 창궐지역(레드존)과 위험지역(그린존)으로 진입해서는 안 된다는 권고에도 반 총장은 뜻을 굽히지 않고 위험지역까지 들어가 현지 방역 상황을 둘러봤다.
반 총장이 에볼라 방문을 마친 뒤에도 논란은 계속됐다. ‘에볼라 관련자 21일 격리조치’와 관련된 것이다. 반 총장이 ‘21일간’이 지난 10일까지 자발적으로 재택 근무하는 방안까지 나왔다. 그러나 유엔 사무총장이 에볼라 현지방문 뒤 재택 근무하면 전세계 에볼라 관련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에게 낙인을 찍게 된다는 사정을 감안해 평소대로 업무와 일정을 강행하기로 했다. 다만 외부 초청행사는 주최 측에 에볼라 관련 사정을 설명하고 초청 의사가 여전한지 물어 참석하고 있다.
이번 에볼라 방문으로 반 총장이 가장 불편해진 것은 ‘손녀들과의 관계’다. 연말연시를 맞아 반 총장을 찾아 손녀들이 왔지만 이들의 안전을 감안, 안아주지도 입을 맞춰 주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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